현장칼럼
블랙 아웃
뉴스종합| 2012-08-22 12:08
어느 날, 미국의 도시 전체가 암흑이 되는 대정전 사태가 벌어진다. 촛불을 켜 놓고 자고 일어난 리포터 루크는 출근 준비를 하며 습관처럼 TV를 켜지만 화면은 시커멀 뿐이다. 휴대폰도 먹통, 엘리베이터는 멈춰 서 있다. 거리의 풍경은 오싹하다.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옷,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생존자는 양초든 랜턴이든 야광봉이든 빛을 지닌 몇 사람뿐이다. 이들은 자가발전기계로 전기를 얻는 7번가 바에 모이지만 시한부나 다름없다. 묵시록적인 영화 ‘베니싱’은 대정전(블랙아웃)이란 상황을 극단으로 밀고 가 전기시대의 종말을 섬뜩하게 그려보인다.

2007년 3월 26일 오후 8시30분 호주 시드니에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1시간 동안 자발적 블랙아웃을 실시했다. 야간 조명으로 전력 소비, 빛 공해를 줄이자는, 일명 ’지구의 시간’이다. 현재 세계 250개 이상의 도시와 수천만가구가 참여하는 전 지구적 행사가 됐다. 


우리에겐 훨씬 이전, 블랙아웃의 기억이 있다. 민방위훈련으로 등화관제란 걸 했다. 불끄고 TV빛이 새는 걸 막느라 겹겹이 커튼을 쳤다. 북한의 공군기가 뜨면 5분이면 서울이 공습당한다며 강제했지만 캄캄한 게 아이들은 괜히 신났다.

서울시와 에너지시민연대가 22일 오후 9시부터 5분간 ’건물 불끄기’행사를 벌인다. 남산 N타워와 63빌딩, 공공기관 587곳, 아파트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이렇게 절감한 게 전국 40만㎾h. 제주도민 전체가 1시간 동안 쓸 수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 여름, 블랙아웃의 공포는 더 컸다. 스위치를 끄는 행위는 에너지 절약 이상이다. 휴대폰 끄기, 과도한 욕망 줄이기, 비우고 멈추기는 현대인의 교양이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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