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운명과 부딪히고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매력을 갖고 있다면 희극은 갈등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잘 해결되고 결국 행복해지는 주인공을 보며 감동을 느끼는 그런 매력이 있다.

대학로에 이런 희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코미디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2회째다.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은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가 침체된 희극분야의 진흥과 공연문화 저변확대를 위해 지난 2010년 부터 격년으로 진행하고 있는 행사다.

이번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엔 1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5개 지원작들과 2개의 자유참가작을 포함해 총 7개 작품이 참가했다.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몰리에르의 ‘위선자 따르띠프’,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최원종의 ‘에어로빅 보이즈’, 공동 창작 작품 ‘휴먼코메디’ 등의 국내외 작가들의 선정작과 최우준 작가의 ‘이웃집 발명가’, 장승원의 ‘영화감독 채영호’ 등 자유참가작들이 관객들에게 대학로 개그쇼와는 다른 차원의 잊지 못할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페스티벌엔 3개의 국내작품과 2개의 해외작품을 소개하면서 작품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검증받은 명작 코미디들을 소개하며 대중들이 갖고 있는 연극의 철학적이고 무거운 이미지들을 벗어버리고자 했다.

▶국내 문학상에 빛나는 천명관 작가의 블랙코미디 ‘유쾌한 하녀 마리사’=‘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바람피우는 남편 토마스 때문에 좌절한 요한나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하녀인 마리사의 웃지못할 실수로 살인으로 둔갑하게 된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마리사의 오빠, 어부 파올로가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 형사 얀크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쫓는 상황들을 통해 추리극에서처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코미디의 날카로운 위트도 동시에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작품 선정을 하며 심사를 맡은 최치림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이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기대하는 작품 중 하나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천명관이 지은 소설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각색해 만든 코미디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작가가 직접 희곡 작업에 참여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초연하게 되는 이 작품은 천 작가의 중단편 소설 모음집 11편의 작품들 중 하나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오는 2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내 코미디 연극의 전설이 되어라, ‘휴먼코메디’=‘추적’, ‘가족’, ‘냉면’ 짤막한 3개의 에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휴먼코메디’는 6명의 배우가 14가지 역할을 한다. 강도 사건을 다룬 ‘추적’은 강도를 잡기 위해 온 여관집을 돌아다니는 설정과 전화기가 떨어져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등 스토리보다 상황으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경연대회에 나온 합창단의 이야기 ‘냉면’과 배를 타고 떠나는 아들을 막기 위한 가족들의 처절한 이야기 ‘가족’에서 볼 수 있는 무성영화가 연상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관객은 원초적인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지난 1999년 ‘코메디 휴먼’이란 제목으로 초연하고 2003년 다시 ‘휴먼코메디’로 재창작해 초연한 이 작품은 올해 재창작 1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오른다.

‘휴먼코메디’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공동창작 작품으로 지난 2004년 스위스의 무멘산츠 극장 초청작으로 선정됐고 2006년엔 프랑스 미모스 국제 마임축제에 초청됐다. 2007년엔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헤럴드 엔젤 어워드’, ‘토탈시어터 피지컬씨어터’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멤버들이 참여하는 이 작품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 ‘시라노’=주인공인 시라노는 추한 외모를 지녔지만 따뜻한 마음과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다. 시라노는 록산느란 여인을 사모하지만 자신보다 외모가 뛰어난 크리스티앙과 록산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 난 후 크리스티앙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고 전쟁터에 나가서 크리스티앙을 지켜 주며 결국 치명상을 입게 된다. 결국 크리스티앙을 향한 록산느의 사랑은 시라노의 편지와 그의 마음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엇갈린 운명 등으로 웃음 속에 감동이 숨겨진 작품.

‘시라노’는 원작자인 에드몽 로스탕이 실제인물이었던 ‘사비니엥 드 시라노 드 베르쥬락’이란 사람의 삶을 이야기로 만든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가 낭만희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창작집단 혼이 선보이는 이 작품은 오는 27일부터 페스티벌 마지막날인 다음달 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웃음과 함께 관객들에게 묘한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한다, ‘이웃집 발명가’=다음달 2일까지 한양레퍼토리극장에서 공연되는 ‘이웃집 발명가’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자유참가작으로 참여했다.

지난 2008년 초연한 이 작품은 개가 인간과 동일시되는 상황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다’를 보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세 인물인 발명가 공동식, 그의 애완견 블랙, 이웃주민 로즈밀러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다. 공동식은 발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애완견 블랙에게 개의 언어를 사람의 말로 번역해 주는 장치를 이식해 준 공동식은 개로부터 그의 발명품을 인정받고 이해받는다.

하지만 이웃 주민인 로즈밀러는 사회에 공헌하는 발명품만을 인정하고 그의 소중한 발명품과 애완견 블랙의 존재마저도 부정한다. 작품은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어떤 삶이 인생에서 가치를 갖는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든다.

개인 블랙이 사람말을 한다는 상황 자체도 우습지만 블랙이 공동식을 이해해주고 로즈밀러 때문에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설정도 코미디다. 로즈마리가 개에게 ‘개처럼 살아라’라고 주문하는 것도 재밌는 상황이다.

연극 ‘이웃집 발명가’는 ‘경찰청 사람들’, ‘성공시대’ 등 재연 다큐멘터리 작가 최우근이 썼고 조은컴퍼니의 김제훈 연출이 제작했다.

▶예술가로서의 삶, ‘영화감독 채영호’=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35세의 인디영화 감독 채영호. ‘영화감독 채영호’는 그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꿈과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진지한 희극이다.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한 장승원 연출은 가난한 무명영화감독의 삶을 통해 행복은 꿈의 성취여부가 아닌 꿈의 존재유무와 실천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이 작품은 채영호와 그의 아내의 생활공간인 옥탑방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단순하게 묘사했다. ‘영화감독 채영호’ 공연은 25일 단 하루, 대학로의 공연장 써커스싸구려관람석에서 진행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