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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10년, 윤석호 감독 “일본 내 한류,균열단계까진 가지 않을 것”
엔터테인먼트| 2012-09-07 08:29
[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드라마 ‘사랑비’의 촬영장으로 쓰인 윤스칼라 사옥. 윤석호(55) 감독과 함께 사진 촬영을 마친 한 일본 아줌마팬이 만난 게 영광이라는 듯 공손하게 악수를 청한다. 윤스칼라 사옥은 ‘General Doctor’로 이름붙은 1층 카페와 2층엔 ‘사랑비’에서 주인공 준(장근석 분)과 하나(윤아 분)가 쓰던 방으로 구성돼 있다. 일본 한류 팬들이 꾸준히 오가는 한류의 명소다.

윤 감독은 “7월말까지 사랑비의 대만판, 일본판, DVD 등 편집을 하느라 바빴다. 8월 초 ‘사랑비’의 후지TV 방영을 앞두고 기자회견도 가졌다”며 지난 5월 드라마 종영 뒤의 근황을 전했다.

‘사랑비’는 국내서 시청률이 저조해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선 대접이 다르다. 드라마 제작 전 선판매돼 후지TV에서 매일 오후4시부터 5시까지 방영하고 있으며, 위성방송인 BSTV가 12월까지 주1회씩 방송한다. 후지TV는 또 겨울연가 10주년을 기념해 8월부터 아침시간대에 ‘겨울연가’를 다시 방영하고 있다. 십수차례 재방인데도 아침시간치고는 높은 시청률 3%를 기록 중이다. 

일본 한류는 아직도 ‘겨울연가’로 대표되며, ‘겨울연가’ 하면 ‘욘사마’ ‘지우히메’도 떠올리지만 늘상 특유의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윤 감독도 빠지지 않는다.

일본 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묻자 그는 “겨울연가가 방영될 때는 횡단보도에서 ‘어? 겨울연가 감독님?’이라고 아는 체하고 일식집 가면 주인도 알아봐줬다. 일본에선 방송 출연, 잡지 인터뷰를 많이 해서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노출이 됐었다. 일본에선 감독에 대한 장인정신 같은 게 있다”고 했다.

‘겨울연가’는 일본 단카이세대(2차 세계대전 이후 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중년여성에게 소녀적 감성을 되돌려 준 콘텐츠란 평가를 받는다. 경제발전을 위해 집안에서 내조만 했던 ‘아줌마’들이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겨울연가’를 보며 잊고 있던 옛 사랑의 감정을 떠올린 것이다. ‘겨울연가’ 이후 일본에선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순애보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일본의 국회의원이 한일관계는 겨울연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표현할 정도로, 겨울연가가 일으킨 효과는 컸다. 윤 감독은 한일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튼 공로로 2004년 NHK 특별공로상을 국내선 관광의날 기념 대통령 표창과 서울관광대상 최고공로자상 등 양국에서 연출과 무관한 분야에서 여러 상을 받기도 했다.

‘겨울연가’ 10주년이 된 해에 터진 독도 발 한일관계 경색이 남다르게 느껴질 터. 그는 “일본에선 한류 팬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신문 방송에서 계속 독도 관련 뉴스가 나오니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분위기가 됐다고 하더라”며 “실제 교류를 하는 사람들은 힘이 들 때다. 하지만 한류 팬층의 저변이 넓어져서 이 층이 균열 단계까지 갈 꺼라고보지 않고, 다시 회복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영상미로 유명하다. ‘겨울연가’ 뿐 아니라 ‘가을동화’ ‘여름향기’ ‘봄의 왈츠’ ‘사랑비’까지 아름다운 풍광과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감성이 공통적으로 관통한다. ‘순수’ ‘아름다움’ ‘따뜻함’은 그의 작품의 모토이자, 윤스칼라가 지향하는 색깔이다.

영상미에 대한 탐닉은 알고보니 광고회사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첫 직장인 제일기획에서 광고영상의 한컷한컷의 강렬함에 매료됐다. ‘느낌’(1996년) ‘칼라’(1996년) ‘순수’(1998년) ‘광끼’(1999년) 등 두글자 제목의 초기작에서 CF 같은 영상연출을 시도했다. “예술하려면 영화하지, 왜 드라마해?”라는 소리도 들었다.

고집스런 그 색깔은 계절 연작으로 이어지며 10년여 넘게 바래지 않았다. 대신 문화 수용자의 구미가 바뀌었다. 스마트기기로 빠르고 짧게 즐기는 21세기 디지털 세대는 ‘사랑비’에서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꼈다.

윤 감독은 “70년대 아날로그식 사랑, 요즘의 디지털식 사랑, 중년의 사랑 등 세가지를 너무 정직하게 보여주려 한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포맷이라고 생각했는데, 흥행에 필요한 이야기의 집중도, 흡인력이 떨어졌다”고 기획단계에서 판단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옛날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고,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지금은 사랑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지다보니 사랑 이야기는 음풍농월처럼 돼 버렸다. 실제 응어리 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분노를 풀기 위해 ‘추적자’ 같은 강렬한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내가 보여줄 영토는 점차 줄어드는 거다”며 속도와 경쟁의 시대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가을동화’, ‘겨울연가’가 주는 정서적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다. 점점 거칠어지기만 하는 시대에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잠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순화적 기능을 한다면 그것도 내 드라마의 미덕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내 드라마는 속도와 강도 보단 순도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그를 보게 하는 장치나 기술은 내가 노력해서 찾아야하는 것 같다”고 변화에 대한 갈망도 드러냈다.

윤 감독은 또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선 “발전하고 있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가 쓴 ‘다섯손가락’ 1회를 봤는데, 피아노를 넣어서 완충시켰더라. 음악이 거친 맛을 순화시킬 것이다. ‘추적자’도 사회적인 이슈를 밀어붙이는 힘이 한편으론 부럽다”고 평가했다.

한편으론 “지나치게 흥행 상품을 만드는 거보단 자기 색깔을 주장하고, ‘자기 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다. 나는 제작자이면서 연출자 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영화감독은 평론가들이 흥행에 관계없이 예술가 대접을 해주지 않나. 방송은 예술보단 대중매체라서 수요자의 호응도가 중요하니까”라며 아쉬워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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