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여가 통한 행복사회, 어떻게 가능할까?
라이프| 2012-09-22 11:06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여가는 단순히 남는 시간의 소비적 활동이 아니다.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이는 창의적 활동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여가시간은 절대 부족하다. 한국은 2012년 기준 1년 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장시간(2193시간)을 기록, 여전히 일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한국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많은 나라는 그리스다. 일을 많이 하는 그리스는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한국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지수도 매우 낮다.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의 국가 행복수준 순위에서 156개국 가운데 56위로 태국(52위)보다 순위가 낮다. 반면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 1위(OECD. 2012. Factbook)다. 이제 삶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는 ‘일과 여가의 균형’, ‘공동체의 회복’과 더불어 다양한 여가활동의 참여기회 제공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지난 19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여가를 통한 행복사회 정책토론회’는 다양한 여가 패러다임과 여가 정책 방안들을 제기했다. 여느 정책 토론회와 달리 여가문화학회와 문화관광연구원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지난 6월부터 매달 ‘2012년 여가정책포럼’을 개최하면서 고민해온 주제이기에 그만큼 심도 깊은 발제와 토론이 가능했다. 여가포럼에서는 여가정책의 필요성과 문화자원봉사 활성화, 생애주기별 여가, 계층특성별 여가, 여가산업 동향, 여가소외자에 대한 지원 등 국민여가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꾸준히 논의해왔다. 


이날 가장 눈에 띄는 발제는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의 ‘새로운 여가 패러다임’이라는 기조강연이었다. ‘휴(休)테크’라는 개념을 도입해 ‘노는 만큼 성공한다’라는 저서를 냈던 김정운 소장은 이 자리에서 인간이 몰입의 경험을 통해 행복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몰입경험이 어떻게 여가활동을 통해 가능한지 설명했다. 특히 앞으로 한국사회의 성장과 발전 모델이 새로운 ‘여가 패러다임’을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을 몇몇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 중 한 가지만 보자. 어디까지나 그의 주장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김 소장은 삼성과 애플의 다름은 기술력의 차이가 아닌 미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삼성은 ‘공시적 레벨’에서 접근한다면 애플은 ‘통시적 레벨’에 와있다는 것. 애플의 미학은 ‘소니’에서 출발해 전기면도기, 전동칫솔, 핸드블렌더, 커피메이커, 헤어드라이어 등을 생산하는 독일 가전업체 ‘브라운’으로 옮겨가고 있다. ‘브라운’ 제품의 디자인은 바우하우스(BAUHAUS)의 단순함과 닿아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폰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애플 사의 미학을 알려면 바우하우스와 서양 현대미술까지 알아야 한다. 바우하우스는 20세기 초 칸딘스키와 클레 등 유명화가들을 마이스터(교수)로 초청해 디자인을 가르치게 했다. 유럽은 이미 카메라가 발명됨으로써 회화가 더 이상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도구가 아니었다.

인상주의는 근대적 주체를 발견한 것이고, 표현주의는 근대적 주체를 확장한 것이다. 그 주체적 경험은 자유시간(Freizeit)이다. 다시 말해 여유이고 여가이다.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이 그렸던 소재는 정원, 역, 소풍, 산책, 술마시기, 보트타기 등 거의 모두가 여가에 관한 것이었다. 인상파에서 찾아낸 주체는 한 마디로 ‘산책자(planeur)’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 소장은 몇 가지의 결론을 내렸다. 애플 사의 미학이나 디자인은 인상파가 발견한 자유정신에서 출발한다. ‘열심히’ 하는 조직의 미래는 모방과 따라쟁이(copycat)다. 주체적 성찰과 미학적 통찰은 여가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고로 창조사회=여가사회다. 한 사회에서 여가는 이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니 놀아야 한다. 놀아도 좀 더 잘 놀아야 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 눈에 띄는 발제는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의 ‘여가기본법 제정을 위한 기본구상’이었다. 한 사회의 여가를 활성화 하려면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최 교수는 ‘여가기본법’ 제정 이유로 몇몇 여가활동 실태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긴 노동시간과 짧은 여가시간, TV시청과 휴식 수면 등 소극적이고 정적인 여가, 여가 몰입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여가생활 만족도가 낮아진다는 점, 빠른 인구고령화와 미흡한 노인여가 대책, 실종된 청소년 여가 등을 꼽았다.

최 교수는 ‘여가활성화기본법’을 제정해 각종 여가 관련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국민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한 여가시간을 확보하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여가활동을 통한 여가만족도를 향상시키며, 여가산업진흥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며, ‘100세 시대’에 대비함과 동시에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꾀한다. 여가활성화기본법은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여가양극화 등 여가 관련 사회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제정되어야 한다.

여가산업은 국가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21세기는 전통적인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에서 아이디어가 지식경제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사회, 문화ㆍ 예술적 창의성을 가진 인적자본이 바탕이 되는 사회로 전환되는 시대”라면서 “근면성실한 장시간 노동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인재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창의적인 인재 양성의 바탕은 여가교육에서 비롯된다. 청소년들에게 창의적 여가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여가인식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청소년 여가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일과 여가 균형을 통한 행복사회 만들기’ 기조강연과 박수정 인하대 생활체육학과 교수의 ‘여가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의 ‘여가정책 실현을 위한 추진체계’ 등도 발표됐다.

이번 토론회는 국민들의 여가생활 활성화로부터 행복의 출발점을 찾고자한 데 의의가 있었다. 일과 여가의 균형을 위해 요구되는 새로운 여가패러다임을 모색했고, 국가 경쟁력 수준에 걸맞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 제도와 정책과제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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