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
10월5일부터 20일간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환노위나 보건복지위 등에서 대거 기업인 증인 채택을 하면서 해당 기업인이 해외출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최고경영자(CEO)는 벌써 해외시장 점검을 위해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감 증인 출석을 피하기 위한 명분쌓기라는 곱잖은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업인 모욕주기’ 행태가 분명히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이를 벗어나고 싶은 심리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국회의 ‘줄소환성’ 기업인 증인 채택은 포퓰리즘 냄새가 짙다는 재계의 시각과 맞물려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노위로부터 증인 채택을 받은 A사 대표는 국감시기에 해외출장을 계획하고 있다. 해외시장을 점검하기 위한 계획서도 마련했다. A사는 대표 대신 실무진이나 임원을 국감장에 보낼 생각이다.
A사 관계자는 “대표는 사실상 국감장에서 얘기될 사안과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국회에 가면 망신만 당할 게 뻔하지 않겠는가”라며 “차라리 실무진이 가서 해명하고 설명하는 게 낫다는 차원에서 (그 현안을 챙겨왔던)임원급을 대신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위로부터 증인 채택을 받은 유통업체 D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D사 사장은 당초 10월말께 해외 파트너십 체결을 위해 출국하려고 했으나, 이를 앞당기기로 했다. D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서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고 강요하고 굴욕감을 주는 국감장에 사장이 앉아 당하면 회사 이미지가 뭐가 되겠는가”라며 “해외출장 일정을 앞당기고, 그쪽 파트너와 논의해 프로젝트 협력을 조기에 맺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예 예정에 없던 해외출장 계획을 짜느라 실무진이 생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P사 임원은 “얼마전 위로부터 해외출장 계획을 서둘러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급하게 일정을 만들기 위해 해외로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괴감도 나온다. 국감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출장을 나가야만 하는 입장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죽하면 이러겠는가”라며 “국정감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이 기업인 증인을 앞에 세워두고 범죄인 취급을 하며 닦달을 하는 풍경이 없어지지 않는한 기업인들이 국감장을 회피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감기간 동안 기업인들이 해외출장을 하는 것은 계속 반복돼 온 현상이다. 대기업 사장은 물론 주요그룹 총수들도 국감 증인 채택시 해외출장을 명분으로 국회에 대참을 시키고‘해외출장 계획서 및 해명서’를 보내는 것으로 대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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