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코스모스와 속삭이다 ‘널’ 만나다
라이프| 2012-10-11 09:57
바람에 몸을 맡긴 코스모스 춤추는 그곳
원두막·허수아비…어린 날 추억 끄집어내고
가을빛을 머금은 고즈넉한 횡성호수길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물빛에 하늘빛에 취하고…
하늘로 오르는 숲길엔 잣나무·층층나무
서로 친구가 되어 자연에 내맡긴다


혀에서 살살 녹는 안심부터 떠오르는 강원도 횡성에서 가을맞이 꽃축제가 한창이다. 한우라면 몰라도 코스모스라니,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다. 오는 17일부터 열리는 ‘횡성한우축제’를 앞둔 횡성은 코스모스 잔치가 먼저 흥을 돋우고 있다.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에 코스모스공원은 조성된 지 겨우 1년이지만 제법 익숙한 가을 정취를 풍긴다. 3만3000㎡ 규모의 꽃밭에서 바람에 몸을 맡긴 코스모스가 일제히 몸을 흔든다. 눈앞에 꽃잎이 한들거리다 멈추고, 이내 곧 하늘거린다. 그렇게 아련하게 멀어질 지금 바로 이 순간, 가을이다.



▶꽃밭에서 놀다 지치면 가을빛 호수길을 걷는다=저만치서 바라만 보면 재미없다. 가을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우천 코스모스 축제’ 현장에는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원두막ㆍ허수아비ㆍ바람개비 등이 어우러져 기억 저편에 방치된 어린 날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가을의 낭만은 밤에도 계속된다. 조명에 반사돼 새하얀 도라지꽃처럼 보이는 코스모스밭 원두막에서는 밀회를 즐기는 커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람개비가 제법 세게 돌아간다. 은은한 조명 아래 분위기 잡는 것도 좋지만 방한복은 제대로 챙길 것. 축제는 14일이면 끝나지만 코스모스는 이달 하순까지 하늘거릴 전망이다. 꽃이 질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7일부터 한우축제가 시작되는 횡성은 지금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등심ㆍ안심 등 담백한 횡성한우로 배를 채우고 우천 코스모스공원의 꽃밭에서 완연한 가을을 느낀다.

꽃밭에서 놀다가 지치면 가을빛을 머금은 고즈넉한 횡성호수길로 간다. 횡성호는 2000년 11월 준공된 횡성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횡성호수길은 지난해 가을에 개통됐는데, 총 6개 구간으로 모두 호수를 끼고 돈다. 총 길이는 27㎞.

가장 짧은 3구간(1.5㎞)은 1시간 정도가 걸려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볼 만하다. 호수 가장 가까이서 걸을 수 있는 5구간(4.5㎞)은 지금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물결이 잔잔해 주변의 꽃과 나무들이 맑은 호수에 사진처럼 투영되는 모습이 일품이다. 물빛ㆍ하늘빛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는 원점 회귀 코스라는 점도 매력이다.

▶조곤조곤 속삭이는 하늘빛… 하늘로 오르는 숲 속 길=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산 1-4에 위치한 ‘청태산 자연휴양림’은 영동고속도로 둔내IC나 면온IC에서 10여분 거리에 있어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편하다.

상주 숲 해설가들이 숲의 생태를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순환임도, 숲 체험 덱로드, 6개 등산로 등이 잘 닦여서 1박2일 동안 머물러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특히 나무로 만든 ‘숲 체험 덱로드’는 청태산자연휴양림의 자랑이자, 수많은 여행객이 방문하는 주 목적이기도 하다.

방문자센터 뒤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약 1㎞에 달한다. 초입에는 나무로 만든 앙증맞은 새집들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잣나무ㆍ소나무ㆍ낙엽송ㆍ층층나무ㆍ자작나무ㆍ산벚나무ㆍ물푸레나무 등이 자라는 울창한 숲 사이에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덱은 경사가 원만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 유모차를 미는 부모들도 걷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등산로라고 하기엔 너무 안락하고, 조금씩 산을 오르는 ‘맛’이 있으니 산책로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하늘빛이 조곤조곤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적막이 흐르는 숲 속을 덱로드를 따라 조금씩 오르다 보면 마치 하늘로 오르는 길에 서 있는 기분이다. 

맑은 물빛과 청명한 하늘빛이 유혹하는 횡성호수길. 자연과 벗이 되어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자연으로 돌아간다.

청태산휴양림은 숙박시설 종류도 다양하다. 숲속의집ㆍ산림문화휴양관 외에도 오토캠핑장ㆍ캠핑카 야영장 등이 있어서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둔내5일장=횡성을 방문한 때가 마침 5일이라 둔내에 장이 서 있었다. 인근 청태산 등을 방문하는 등산객들이 많은지라, 건어물, 야채부터 시작해 각종 아웃도어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시골장이라고 하면 복작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장터 모습은 차분하고 한산하다. 도심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신기하겠지만 이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장 한쪽 건어물상에서는 적당히 건조된 말랑말랑한 노가리가 ‘주당’들을 유혹한다. 설탕이 듬뿍 묻은 꿀꽈배기를 보니 침이 저절로 고인다. “저기 앞집 손두부가 잘 안 팔리면 모두 공치는 날”이라며 “둔내장 최고 인기 품목인 손두부 맛을 꼭 보고 가라”고 어묵상이 귀띔해준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자작나무 4000그루가 자라고 있는 우천면 두곡리에는 이름 그대로 ‘미술관 자작나무숲’이 있다. 사진작가인 원종호 관장이 20여년 동안 손수 가꾼 숲과 정원이다. 스튜디오 갤러리와 전시실 2곳, 펜션 2개동을 갖추고 있다. 원 관장의 살림집과 스튜디오로 쓰이던 곳은 방문객들이 책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아늑한 쉼터가 됐고, 곳곳에 전시된 원 관장이 직접 찍은 자작나무 사진들도 볼 만하다.

미술관을 둘러싼 자작나무들은 언뜻 쓸쓸한 듯 보이지만 강단 있게 하늘로 쭉쭉 뻗어 있다. 미술관은 코스모스가 만개한 횡성의 가을 풍경과는 또 다른 계절 속에 있다. 개관 당시 2000원이던 입장료는 현재 13000원까지 올랐다. 입장료 인상은 숲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원 관장의 고육지책이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최근 사색과 예술을 즐기는 관람객들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횡성=글ㆍ사진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