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3자 대결 분명한데… ‘3자토론’은 없다?
뉴스종합| 2012-10-25 11:57
중반전으로 접어든 18대 대선은 ‘3자 구도’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향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맹렬한 추격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막판 단일화 변수가 여전히 열려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들 세 명의 주자가 펼치는 TV토론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 직후 본격적인 막을 올린 150여일간의 대선 레이스 절반 이상을 끌고온 3자 구도도 ‘기계적 형평성’을 앞세운 선거법의 벽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 돼버렸다.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12월 4일과 10일, 그리고 16일 세 차례의 TV토론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필수 토론이다.
문제는 참여 대상이다. 소위 ‘메인’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세 차례 토론 참석자 규정에 따르면, ‘빅3’인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는 물론, 1%대 지지율을 오락가락하는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 그리고 심상정 후보까지 함께해야 한다. 의석수 5석 이상의 정당 추천 후보이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경우 무소속이지만,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참석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즉, 실제 대선 구도와는 상관없는 ‘5자 TV토론’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 같은 어정쩡한 TV토론은 ‘맥빠지는 토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2시간가량 이뤄지는 TV토론에서 한 후보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산술적으로 20여분에 불과하다. 이 중 사회자, 또는 패널의 질문 시간까지 감안하면 실제 후보자들의 발언 시간은 채 15분에도 못미칠 공산이 크다. 세 번의 토론을 다 합해도 30여분 만에 복잡한 외교, 안보, 경제, 복지, 사회, 정치 현안 모두를 말해야 하니, 당연히 수박 겉 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간 단일화가 TV토론회 이전에 이뤄진다 해도 맥 빠진 토론을 피하기는 힘들다. 실제 대선은 여-야 두 후보의 치열한 다툼이지만, 법은 다른 후보들에게도 공평한 시간 배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애써 TV토론을 보겠다고 자청한 유권자들은, 정작 비교대상 밖 후보들을 위해 절반의 시간을 버려야 한다.
이런 재미없는 ‘TV토론’은 ‘TV토론 무용론’을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유권자, 특히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명확한 선택 기준이 돼야 할 TV토론이 아닌, TV토론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지지후보를 결정한 ‘열혈 유권자’들만 보는 정치쇼로 전락하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현상은 이미 여러 선거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2년 대선만 해도 세 차례 TV토론을 봤다는 유권자가 70%를 넘겼지만, 5년 후 대선에서는 49.6%만이 한 번이라도 봤다고 답했다. 또 지난해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TV토론의 우열과 선거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토론이 다 끝나고 나서 누가 잘했냐고 물으면, 결국 원래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의미없는 TV토론의 반복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각 방송사들이 미국식 ‘타운홀’ 진행, 유권자들의 돌발 질문, 실시간 선호도 평가 등 흥미 유발을 위한 각종 장치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시간의 제한상 효과를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또 눈에 띄게 줄어든 부동층도 TV토론의 영향력을 한층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는 채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특히 야권 단일화를 염두에 둔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이 숫자가 5% 아래로 떨어진다. 사실상 대부분의 유권자가 이미 지지후보를 정해놨고, 이들 대부분은 TV토론 결과와 상관없이 투표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빅3 후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사 자체 토론회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 같은 경직된 법과 제도, 그리고 이에 따른 토론회 자체의 흥미 저하도 한몫 하고 있다”며 “토론회에 따라 등락이 엇갈리는 미국 대선 같은 풍경을 이번 우리 대선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정호ㆍ손미정 기자/choijh@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