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 중에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들 조성하를 지목한다.
조성하는 김문흠 감독의 영화 ‘비정한 도시’에서 양심과 싸우는 나약한 택시기사 돈일호 역을 맡았다. 그는 뺑소니 사고로 이제껏 쌓아왔던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
“이제까지 다른 작품들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강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비정한 도시’에서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이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 의외의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감정의 기복들이 심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서 접근했어요.”
‘비정한 도시’는 조성하, 김석훈, 서영희, 이기영, 안길강 등 충무로의 내로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24시간 동안 도시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연쇄 비극을 담은 영화다.
이 작품은 살인과 폭행, 강간 등 강력 범죄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불안 심리가 팽배해 지고 있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주위에는 좋은 분들이 있고 그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도, 실패를 하거나 현실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죠. 이 사회가 과연 어디서부터 비정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을 해보는 편이에요.”
조성하는 한때 생계유지를 위해 직접 택시를 운전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속에 이제야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조성하. 그는 이번 작품을 시작함에 있어 김문흠 감독의 열렬한 구애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처음에 받았을 때 구성이나 인물들의 입체적 느낌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구성을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당시 ‘로맨스 타운’ 스케줄 문제도 있었고 ‘화차’ 촬영을 들어가는 상황이었어요.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했었는데 김문흠 감독이 ‘로맨스 타운’ 쫑파티까지 찾아와서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온 줄도 몰랐거든요. 매니저가 알려줘서 김문흠 감독과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서 열정이 느껴졌고 작품을 같이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함께 하는 걸로 결정했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이 상황을 보고 김문흠 감독이 조성하를 데려오기 위해 ‘삼고초려 했다’고 말한다. 조성하 역시 감독의 정성에 ‘비정한 도시’ 노 개런티 출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조성하에게 노 개런티로 작품에 참여한다는 소식은 자칫 아내의 화를 살 수도 있다. 그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아내에게 애교 섞인 메시지를 전했다.
“요즘에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열심히 돈벌이 하고 있으니까, 간혹 이번 ‘비정한 도시’처럼 좋은 작품에 노력봉사 하는 것을 좀 더 이해해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시크릿으로 삼아서 집사람 귀에 안들어가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알게 돼 상당히 불편하다”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가 ‘비정한 도시’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에게 ‘비정한 도시’에서 힘들었던 장면을 손꼽으라면 뺑소니 장면이다. 한 테이크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한 장면 안에 모든 감정의 기복이나 감성과 이성이 교차되는 부분을 담아내야 했어요. 게다가 많은 생각들을 지루하지 않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또 눈물이 나고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죠.”
평범한 돈일호가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된 계기가 되는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사고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배우 조성하의 관록이 묻어나는 장면 중 하나다.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경험을 쌓은 그가 앞으로는 어떠한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게 될까.
“항상 새로움 속에서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안에서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안 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죠. 자신만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가다 보면 자기의 영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에 조성하에게 따라붙는 ‘꽃중년’에 대한 수식어를 물었다. 그는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꽃중년’이라고 해주셔서 늘 감사하죠. ‘꽃중년’이라는 수식어가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그에 어울리는 연기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아울러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후배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직 제가 누구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한 마디를 남기자면, 늘 용기를 가지고 한 길로 정진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성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되는데 여러분들도 분명히 될 겁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무언가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조성하는 ‘다작 배우’라는 수식어에 소신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게 되면 인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도 하지만, 주위에 부러움과 질투를 사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단지 늦은 나이지만 열정을 가지고 작품에 임할 뿐 입니다.또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도 한 몫 했죠. 입봉 하는 감독들을 도와주고 싶은 의리도 있고요.”
인터뷰 중간에 그가 했던 “소신을 가져라”는 말이 다시금 귓가를 맴돈다. 배우라는 길을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조성하가 선택한 지난 25일 개봉한 ‘비정한 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본다.
조정원 이슈팀 기자 chojw00@ 사진 황지은 기자 hwangjie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