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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와 ‘폴리페서’
뉴스종합| 2012-10-31 11:20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유행병이 또 도졌다. 1000명에 육박하는 대학 교수들이 유력 후보의 캠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다. 각종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거나 글을 써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사람들이 눈에 띈다. 또 학계에서 출중하다는 평판을 듣던 사람들도 꽤 있다.

지식인이나 지성인의 정치권 쏠림 현상은 비단 교수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언론인 출신들도 이 캠프, 저 캠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법조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모든 전문직(professional)에 있던 사람들이 앞 다투듯 정치 현장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동안 쌓아 올린 지식이나 지혜, 그리고 경험을 공공영역에 투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신의 변을 내세우고 있다.

다른 직종 사람들의 처신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4반세기 넘게 학교에 있으면서 소위 ‘폴리페서’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느낀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과연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 구성원인 교수에게 있어 훌륭한 동량을 길러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이다. 연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한 과정이다. 더 많은 진리나 지식을 계속 습득하지 못하면 그 강의는 속 빈 강정이 된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공동체에 대한 봉사나 현실 참여도 교육과 연구로 얻어지고 축적된 결과를 사회에 되돌려 주고 나누는 일이다.

정민 교수의 ‘일침(一針)’이라는 책머리에 심한신왕(心閒神旺)이라는 말이 소개되었다.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이 활발하다는 뜻이란다. 부산하게 움직이면 정신이 쉬지 못하고 따라서 바깥 물정에 휘둘리면 자기가 할 바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방학도 아닌 학기 중에 캠프에서 열심히 일하고 또 충실하게 강의할 수 있을까?

그들은 강의 평가도 좋고 연구 실적도 기준을 넘어 설 정도로 충실하다고 말한다. 형식 요건은 맞추었는지 모르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함량 미달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오래 된 노트에 새로운 것을 조금씩 끼워 넣거나 대강이나 특강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충실한 강의일까? 기존 이론 틀을 축으로 현상만을 알량하게 기술하는 것이 뻐길 수 있는 연구일까?

학교생활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밖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 본업에 소홀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로마의 어느 철학자 얘기가 생각난다.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은 남에게 줄 수 없다(Nemo dat quod non habet)는 경구다. 자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돕고 봉사할 수 있단 말인가?

몸이 한가해야 정신도 맑아지고 정신이 맑아야 학문에 전념할 수 있다. ‘폴리페서’로 불리는 ‘교수님’들은 더 이상 교수가 아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정치인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대학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더 답답한 일은 지금도 불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가을 하늘은 공활하고 청명한데 가슴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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