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14라운드
뉴스종합| 2012-11-14 11:16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붐붐’이란 애칭에 걸맞게 24승(19KO) 1패의 가공할 파괴력의 챔피언에 맞선 도전자는 물러설 줄 몰랐다. 앞으로 전진만 하는 훈련을 한 도전자는 적어도 10라운드까지 챔피언을 몰아붙였다. 종반에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했다. 13라운드에는 39연속타가 도전자의 얼굴에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그리고 비운의 14라운드, 링에 쓰러진 도전자는 로프를 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30년 전인 1982년 11월 14일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이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에서 쓰러진 김득구는 결국 5일 뒤 세상을 떠났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행상으로 아들을 키웠던 김득구의 어머니는 3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판이었던 리처드 그린도 7개월 뒤 자살했다. 흑인이 판치던 사각의 링에서 백인의 우상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챔피언 레이 맨시니는 충격으로 링에서 은퇴했다.

후폭풍도 거셌다. 복싱의 잔혹성이 문제가 됐고, 미국 하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다. 이후 세계타이틀전을 15회에서 12회로 줄이는 등 선수 보호책도 나왔다.


1970년 개발연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복싱이었다. 주린 배로 샌드백을 두드리면서 세계챔피언을 꿈꾸는 복서의 모습은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의 슬로건의 스포츠 버전이나 다름없었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헝그리정신을 앞세웠던 복싱은 급전직하, 그 자리를 프로야구가 대신하고 있다.

1982년 김득구는 27세, 유복자인 아들을 남겼다. ‘맨주먹 하나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대한민국 만세’ 등을 앞세웠던 그 시절 ‘헝그리정신’이 그리운 건 왜일까.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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