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한국과 먹고 입는것 다를바 없는데…행복의 차이는 어디서?
라이프| 2012-11-16 11:52
조세부담률 45%, 한국의 2배이지만
노사정 대타협 통해 사회통합 유지
분배정의 실현으로 빈부격차 줄여

1인당 국민소득 6만弗의 부국이어도
물질적 욕망에 매달리면 그끝은 결핍…
돈으로 못채우는 정신적 요인 실감


[스톡홀름=이해준 문화부장] 노르웨이 서부의 베르겐을 기점으로 환상적인 피오르 여행을 마친 다음 기차를 타고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베르겐을 출발해 오슬로를 거쳐 저녁 10시가 돼서야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는 데만 13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북구의 전원 풍경과 노르웨이 남부 산악지대의 설원, 끝없는 침엽수림 지대가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북위 60도를 넘어 겨울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북유럽은 사람이 살기에 우호적인 곳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 험한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며, 세계 최고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든 이들의 저력이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덴마크를 포함해 9일간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머릿속에선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떠나지 않았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북유럽인들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인가….

▶1인당 소득 10만달러, 세계 최고 물가=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강하게 받은 인상은, 피오르의 멋진 풍경도 풍경이지만, 이곳의 엄청난 물가였다. ‘미친’ 물가라고 할 만했다. ‘물가가 이렇게 비싸다면 국민소득이 늘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가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야간페리를 타고 오슬로로 노르웨이에 처음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를 괴롭혔다.

북해를 가로질러 코펜하겐과 오슬로를 매일 운행하는 스칸디나비아 크라운호 안은 많은 승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마침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어 승객들이 갑판으로 몰려나왔다. 이들은 소시지와 스낵을 안주 삼아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흥겨운 오후를 즐겼다. 페리 탑승이 주는 묘한 흥분과 어울리면서, 진짜 풍요의 나라에 온 실감이 났다.

 
실제 노르웨이는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이 9만8000달러로 10만달러에 육박하는 나라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으나, 북해 유전 개발과 2000년대 이후 유가 급등으로 소득이 수직 상승했다. 특히 2002년에 4만달러를 넘은 후 해마다 1만달러씩 늘어나 2008년에 9만5000달러에 달했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로 주춤했으나 다시 뜨고 있다.

하지만 페리 안에서의 물가는 상상 이상이었다. 서유럽의 2배, 한국의 4배 정도였다. 소박한 샌드위치와 음료가 12.6유로(약 1만7000원), 저녁식사는 259DKK(덴마크크로네)로 5만원이 넘었고, 아침은 130DKK로 2만6000원이었다. 3개월 전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한 야간페리의 뷔페식사 가격이 1만5000~2만원 정도였던 점에 비춰봐도 터무니없었다. 필자는 흘끔흘끔 가격표를 보면서 환율을 계산하기 바빴다. 가격타령만 하는 처지도 안타까웠다. 7개월째 세계를 여행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노르웨이가 부정적인 인상만 준 곳은 아니었다. 여유가 넘치는 오슬로와 베르겐, 오슬로 시청사의 아름다움과 북유럽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뭉크미술관은 잊을 수 없다. 오슬로의 노벨평화센터에서는 평화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슬로 시청사와 노벨평화센터에서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확인한 것은 감동적이었다.

▶스톡홀름의 아름다움과 여유에 빠지다=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뒤로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해서는 이곳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스톡홀름에는 노벨상 시상식 후 연회가 열리는 시청사를 비롯해 1628년 전쟁에 나섰다 침몰한, 가장 오래된 전함을 전시한 바사호박물관, 북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음미할 수 있는 스칸센박물관, 중세 북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감라스탄 지구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우리는 시청사와 감라스탄 지구, 스칸센박물관 등을 돌아보았다.

평화로운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모습. 북해 연안의 섬들로 이뤄진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릴 정도로 북유럽의 문화전통이 복합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붉은 벽돌 80만개를 사용해 1911~1923년 완공된 시청사는 북유럽 건축미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건물엔 북유럽의 신화와 역사, 전통을 표현한 다양한 벽화와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중앙의 블루홀과 시의회 회의실, 좌우대칭의 미를 보여주는 왕자의 방, ‘호수의 여왕’ 신화를 형상화한 대형 모자이크로 벽면을 장식한 황금의 방 등이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해마다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자 만찬을 비롯해 매년 300회 이상의 이벤트가 열리는 시청사가 시민들의 결혼식 공간으로 개방된다는 점이었다. 시청사 2층을 개방하는데, 매주 토요일 36쌍이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50초, 가장 긴 것이 3분에 불과하지만 신청자가 워낙 많아 최소한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시청사라는 기념비적 건물에서 사진을 찍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런 이벤트를 통해 시민과 친숙해지려는 당국의 배려가 돋보였다.

스칸센박물관은 일종의 민속 및 자연공원이었다. 작은 산 하나를 다 차지한 넓은 부지에 스웨덴 각지의 민속가옥과 생활시설, 동물원을 배치했다. 민속가옥은 스웨덴 곳곳에 있는 150여채의 전통가옥과 생활도구, 풍차, 우체국 등을 통째로 뜯어다가 아예 새 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밖에선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입이 딱 벌어졌다. 놀라웠다.

▶안정된 경제와 복지만으로 행복할까=스톡홀름을 떠나는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 필자와 둘째아들은 최고의 만찬을 하기로 했다. 워낙 비싼 물가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렇다고 식도락을 뺀다면 여행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둘째는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최고 부자나라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아들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

호스텔에서 대중적 전통요릿집인 ‘그릴(Grill)’을 소개해줬다. 가격도 적절하고 맛도 좋아 인기가 최고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안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고 요리사들과 웨이터들도 바삐 움직였다. 쇠고기 BBQ구이와 양고기를 주문했는데, 2인분이 603SEK(스웨덴크로나)로 약 10만2000여원에 달했다. 서비스도 친절했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다 푸짐한 음식을 대하니 갑자기 행복해졌다. 둘째도 만족했고, 귀국 후 공부에 전념하리라는 각오도 다졌다. 여러 가지로 행복감이 몰려왔다.

스톡홀름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독일로 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국민소득이 6만~9만달러를 넘는 부국이며, 복지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행복을 보장할까? 사실 국민소득이 2만달러인 한국 국민이나 10만달러 국민이나 갖고 있는 것은 비슷했다. 주택ㆍ가구ㆍ자동차 등의 품목은 물론, 먹는 것이나 입는 것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규모나 질ㆍ디자인 등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그동안의 연구 결과, 소득 1만5000~2만달러를 넘으면 물질적ㆍ경제적 요인이 주는 행복의 정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물질적 욕망에 매달리다 보면 끝없는 만족의 결핍 상태에 빠져든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원하게 되고, 물가는 더 오르게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이웃 등 공동체와의 관계, 취미나 자아실현의 정도다. 정신적ㆍ문화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북유럽 국가들은 또 작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노르웨이의 인구는 500만명, 스웨덴의 인구는 950만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찍이 정치권과 경영자 및 노동자단체가 임금격차를 줄이고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협약을 통해 사회적 유대를 강화했다. 한국보다 2배 정도 되는 45% 이상의 조세부담률을 바탕으로 분배에 중점을 둬 빈부격차가 세계 최저다.

이를 바탕으로 북유럽은 세계 최고의 행복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정말 많지만, 그렇다고 이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hj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