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청계광장 ‘다슬기’ 작가 올덴버그,그 아이러니의 미학
라이프| 2012-11-20 09:54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의 고풍스런 시(市)청사 앞에는 거대한 빨래집게가 자리잡고 있다. 시청사와 맞먹을 정도로 크게 뻥튀기된 빨래집게는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며 낯설면서도 경쾌한 해학을 선사한다.

불과 손가락만한 크기의 빨래집게가 수십m 크기로 확대돼 위용을 자랑하니 그 엉뚱한 발상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

어디 그 뿐인가. 초대형 숟가락에 붉은 체리를 살짝 얹은 미네아폴리스 조각공원의 ‘스푼브리지와 체리’(1988), 도쿄 국제전시센터의 ‘톱,톱질’(1996)같은 공공조각 또한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적 조형물로 명성이 높다.

이들 조각을 만든 이는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83)이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물건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거나, 본래 딱딱한 재질의 것을 부드럽게 만듦으로써 기이한 아이러니를 선사해온 작가다. 스웨덴 출신으로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세계 각지를 오가며 살았던 그는 한때 기자생활을 했지만 미술에의 꿈을 버리지못해 뉴욕에서 작가로 데뷔했다. 


올덴버그는 지난 2006년 청계천 입구에 설치된 높이 20m의 다슬기 모양 조각 ‘스프링(Spring)’으로 우리와도 친숙하다.

‘팝아트의 살아있는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올덴버그와 그의 아내이자 평생동지였던 코셰 반 브루겐(Coosje van Bruggen,1942-2009)의 작품전이 서울서 개막됐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PKM트리니티갤러리(대표 박경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올덴버그 부부의 협업작품을 대거 공개하는 자리로,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올덴버그에게 명성을 안긴 주요 환경조각의 마케트(조각제작을 위한 모형)와 대형 실내조각, 희귀드로잉, 판화 등 43점이 나왔다.

이번 회고전을 위해 PKM갤러리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트리움에 3m가 넘는 대형 실내조각(2005,2006년작) 2점을 별도로 설치했다. 그간 음악, 영화, 공연 등의 컨텐츠를 제공해온 타임스퀘어는 올덴버그 부부의 대작을 메인공간에 설치함으로써 대중들에게 기발한 상상력과 창조정신을 지닌 작가의 예술세계를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이중 PKM갤러리와 타임스퀘어에 출품된 조각은 프렌치 호른, 클라리넷, 색소폰, 하프 등 악기를 테마로 한 작품이다. 지난 1992년 프랑스 루아르지역의 고성을 사들인 부부는 ‘뮤직룸’을 만들고, 다양한 악기조각들을 만들었다. 악기조각에서도 일상의 사물에 변형을 가해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초현실적인 조형세계를 선보여온 부부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악기 조각 외에 PKM갤러리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대형 조형물이 설치된 ‘거꾸로된 칼라와 타이(Inverted Collar and Tie)’,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1985년 베네치아에서 시행한 퍼포먼스에 등장했던 ‘칼 배(Knife Ship)’를 작은 크기로 제작한 조각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다큐멘터리 자료도 곁들여져 이 재기발랄한 부부의 실험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일찍이 “삶만큼이나 무겁고 적나라하며, 달콤하고 어리석은 예술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고 되뇌었던 올덴버그는 일평생 ‘변혁과 실험’을 추구했다. 특히 1962년 처음 등장한 ‘부드러운 조각품’(soft sculpture)은 그의 삐딱하면서도 남다른 예술철학을 잘 보여준다. ‘부드러운 타자기’, ‘부드러운 욕조’는 더없이 딱딱한 공산품인 타자기와 욕조를 비닐, 스펀지, 고무로 환치시킨 것으로, 일상의 진부한 물건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상업주의, 대량생산의 신격화라는 이슈를 탐구한 유쾌한 시도였다.


이후 이들 부부는 반(反) 기념비적인 조형물인 ‘빨래집게’(1976), ‘벽을 자르는 칼’(1986), ‘떨어뜨린 콘’(2001)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명성을 떨쳤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이들 부부가 한국에 설치한 ‘스프링(Spring)’의 탄생과정을 엿볼 수 있는 드로잉도 출품됐다. 2005년 1월 어느날, 이 부부는 작은 메모지에 물방울 모양의 드로잉을 그렸다. 이 물방울 드로잉에 두사람의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간 끝에 청계광장에는 거대한 다슬기 모양의 공공조형물이 완성된 것이다. 사진은 올덴버그와 반 부르겐 부부의 ‘프렌치 호른 Unwound and Entwined’. 2005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 폴리우레탄 에나멜 등. 345.4x142.2x167.6cm.ⓒ Claes Oldenburg and Coosje van Bruggen.Photo courtesy the Oldenburg van Bruggen Studio and Pace Gallery. 02)515-9496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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