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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뉴스종합| 2012-11-21 12:10
고용없는 기업 낙인
전세계서 70만 고용…미국선 고작 4만명

제조업 배신자 비난
IT기기 1억6000만대 모두 미국外 생산

세무당국 집중 포화
천문학적 이익 불구 세금은 쥐꼬리만큼

무자비한 甲의 횡포
영업이익률 30%대…협력업체는 1%대 그쳐


# 2011년 2월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주요 인사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CEO(최고경영자)에게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잡스는 그러나 “그런 일자리는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잡스에게 거듭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잡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11 회계연도 애플이 생산한 스마트 기기는 1억6000만대. 애플의 스마트 기기는 여전히 단 한 대도 미국에서 제조되지 않고 있다.

# 2011년 1월 한국=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6번째로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위대한 기업에서 사랑받는 기업으로 가야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기업 총수들은 고용 11만8000명과 투자 113조2000억원을 약속했다. 7개월 뒤 이 대통령을 다시 만난 대기업 총수들은 추가로 고용 6000명, 투자 1조6000억원씩 늘리겠다고 화답했다.

경기침체와 고용악화라는 공통 숙제를 안고 있던 한ㆍ미 양국의 두 대통령은 비슷한 주요 기업들에 이렇듯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기업 애플과 한국 대기업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일자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사항인데도 애플은 고개를 돌렸다.

만약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 국내 기업들과 달리 이윤추구에만 역량을 총결집하는 ‘애플웨이’를 고집했다면 애플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30%대 영업이익률의 이면…고용 없는 성장의 주범=1950년대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인 노동자 40여만명을 고용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도 1980년대에 수십만명을 채용하며 일자리 확충에 기여했다.

반면 애플의 미국 고용인구는 4만여명이 전부. 그나마 이들도 경영지원, 디자인, 연구개발 등의 분야에 치중돼 있다. 제품을 조립ㆍ생산하는 인력은 대부분 하청업체들에 포진된 상태다. 중국과 대만 등지에 값싼 노동력으로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70만명으로 추산된다. 실제 애플은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을 주문하며 촘촘한 생산 일정을 맞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덕분에 애플은 프리미엄급 스마트 기기를 적은 비용에 빠른 속도로 찍어내며 30%가 넘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의 이런 이익 창출이 미국 내 일자리 증가와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애플의 고용창출 효과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결국 막대한 이익을 나눠갖는 이들은 애플 임직원들과 주주들인 셈이다. 지난 회계연도 애플 임원들의 보상액은 1080억달러로, 이는 미시간과 뉴저지, 매사추세츠 주의 예산을 합친 액수보다 더 컸다. 제어드 번스틴 전 백악관 경제담당보좌관은 “애플은 미국에서 현재 중산층 일자리가 얼마나 나오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기도 했다.

만약 애플이 한국 내에서 생산직 일자리만 4만여개를 만드는 삼성전자, 5만4000여명을 고용하는 현대차그룹과 공존한다면 차이는 더욱 극명해질 수 있다. 

▶쌓이는 이익, 세금은 쥐꼬리=한국 기업이 고용창출에 소극적이고 조세회피를 통해 세금마저 적게 낸다면 기업 이기주의 전형이란 꼬리표가 붙을 수도 있다.

애플은 네바다 주 리노에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소수의 직원만 두고 있다. 덕분에 애플은 캘리포니아 등 미국 20개 주에서 부과하는 세금 수백만달러를 피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법인세율은 8.84%이지만 네바다 주의 법인세율은 0%다. 애플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제2의 리노’를 두고 합법적 세금 줄이기를 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이 덕분에 2012 회계연도 기준(2011년 10월~2012년 9월)에 전 세계적으로 368억달러(40조14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도 각국에 납부한 법인세는 전체 이익의 1.9%인 7억1300만달러(7790억원)에 그쳤다. 전 회계연도에도 애플은 각 나라에서 1억2500만대의 아이폰과 5800만대의 아이패드, 1350만대의 맥북을 팔아 240억달러의 이익을 올렸지만 2.5%의 법인세만 납부했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적용받는 법인세 세율인 35%나 영국의 24%와 비교하면 10분의 1 이하 수준이다.

마틴 설리번 전직 미 재무부 경제학자는 “애플이 조세회피를 구사하지 않았다면 미국에 내야 할 세금은 24억달러 더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세무당국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생ㆍ공생 없는 ‘나만 제일 잘나가’=동반성장이 큰 화두로 떠오르며 대ㆍ중소기업 상생이 강조되는 상황에 비춰보면 애플은 최근 이 같은 흐름과도 거리가 먼 기업이 될 수 있다.

미 시러큐스대학에서 조사한 결과, 2010년 기준 아이폰 1대 가격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1.9%다. 이를 뺀 나머지 중 애플이 가져가는 비율은 무려 58.5%나 된다. 하지만 각국 협력업체들을 보면 대만과 일본이 0.5%, 중국이 1.8%, 유럽이 1.1%에 그친다. 한국은 그나마 4.7%로 높았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협력업체들 사이에서는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기존 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한 부품업체 사장은 “애플이 0.004달러를 인하해 달라고까지 했다”며 “애플과의 가격협상은 일종의 전쟁”이라고 비유했다.

특히 국내 부품업체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는 점에서 애플의 이 같은 납품단가 인하는 협력업체의 고사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 애플 1차협력사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2010년 4.7%, 2011년 4.9%에서 올 상반기 1.3%로 급감하기도 했다.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엄격한 동반성장지수에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공헌도 마찬가지. ‘애플을 벗기다’의 저자 안병도 IT칼럼니스트는 “애플은 편리한 기기를 보급하는 것이 곧 사회공헌이라고 인식한다. 애플 법인명으로 낸 사회공헌기금은 극히 적다. 만약 똑같은 철학을 한국에서 적용했다면 가장 인색한 기업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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