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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옵서버 국가까지.. 팔레스타인 65년 ‘가시밭길의 역사’
뉴스종합| 2012-11-30 09:55
[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지위를 얻기까지 65년의 역사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불리던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아랍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아랍 세력들은 즉각 무력 대응에 나섰고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질긴 악연이 시작됐다.

1949년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휴전했지만 이스라엘은 1947년 유엔총회 제안 당시 보다 더넓은 영토를 갖게 됐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요르단이 점령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지구에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손에 넣었다.

1974년 11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유엔에서 발언권을 얻었다. 유엔총회 결의안 3236호를 통해 팔레스타인은 자결권을 인정받았고, PLO는 유엔의 ‘옵서버 단체’ 자격을 얻었다. 1988년 11월 PLO는 1967년 이전에 설정된 경계선상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언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부터 일부 병력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설립했다. 2004년 사망한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마무드 압바스가 2005년 1월 PA 수반이 됐고,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 병력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이슬람주의 과격 무장정파 하마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2007년 PA와 이스라엘은 두 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한 평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고 2009년까지도 협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2010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보류해 달라는 PA의 요구를 거부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PA 사이의 협상은 무산됐다. 지난해에도 PA는 유엔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었은 유엔 산하 유네스코 정회원국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1년여만에 결국 팔레스타인은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인정받게 됐다.

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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