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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재계 총수도 중수부 ‘VIP룸’ 떠올리기만 하면 ‘몸서리’
뉴스종합| 2012-11-30 11:04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는 곳…”
한 기업인 유명한 발언 회자
오너 구속땐 사업차질…
수사모멸감에 정몽헌·남상국 극단적 선택도



검찰의 내부 갈등이 깊어지면서 재계도 숨을 죽이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는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을 정점으로 한 특수부 검사들은 최근 한 총장의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최저 형량 구형 지시 의혹, LIG그룹 비자금 수사에서 그룹 오너 일부에 대한 불기소 처분 의혹 등을 문제 삼고 있다.

12월 20일 항소심 선고를 앞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28일 검찰의 4년 구형에 대한 선고를 앞둔 최 회장, 항소심이 진행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1심 재판 중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 지루한 법정 공방 중 검찰에 맞서야 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대로 대기업들은 정권과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비자금 조성과 부당 내부 거래의 끝없는 유혹을 받으며 이를 감시하는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재벌닷컴은 흥미로운 자료를 냈다.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이 모두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집행유예로 실형을 살지 않았고, 형이 확정된 뒤 평균 9개월 만에 사면받았다. 법원의 배려(?)가 있었지만, 이렇듯 난다 긴다 하는 재벌 총수들도 떨게 한 것이 검찰이다.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수사선상에 오른 굴지의 대기업들은 검찰의 거듭된 자복 요구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총수들은 국외로 나가 소환조사를 어렵게 했다. 기업이 정치권에 제공한 채권을 추적하기 위해 명동 사채시장 등을 저인망식으로 샅샅이 뒤진 검찰은 검은 채권과 수표를 상당수 포착했고, 각종 비리 관련 첩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수사 초기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직접 5대 그룹 부회장급을 만나 협조를 당부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안 부장은 압박용 압수수색과 총수 비리 내사 액션을 취했고, LG그룹이 당시 한나라당에 차떼기로 150억원을 제공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물꼬가 트였다.

당시 사건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손길승 전 SK 회장이 기소됐고, 삼성 LG 현대차 롯데 등의 재벌 총수들은 전원 불입건 조치됐다. 대신 이들 기업을 포함해 대한항공 롯데쇼핑 롯데건설 한화증권 아시아나항공 금호그룹 두산그룹 등의 구조조정본부장급 임원에 대해서는 전원 불구속 기소해 이후 한동안 법정 공방으로 재계 전체가 들썩였다.

많게는 수십만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를 것 같은 재벌 총수들이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때로는 구속 수감 이후 겪는 자괴감은 그들 입장에서 남다른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1층 중수부 복도 끝의 ‘VIP룸’으로 불리는 1113호 조사실은 전직 대통령들과 그 친인척들은 물론, 수많은 대기업 총수가 조사를 받던 곳으로 악명 높았다.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던 한 기업인은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는 곳”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구속된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검찰청사 내 구치감도 치욕의 장소다. 독서나 운동ㆍ명상 등을 할 수 있는 구치소와 달리, 구치감에서는 포승줄에 묶인 채 조사 차례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진술을 하지 않을 경우, 종일 구치감에 대기시키고 잠깐 불러들여 형식적인 질문만 한 뒤 돌려보내는 식의 검찰식 심리게임의 용도로도 쓰인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한 대기업 오너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밤늦은 시간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검찰 수사관 2명과 함께 1500㏄ 준중형차 뒷좌석에 비좁게 오른 그의 뒤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자리를 지켰던 40여명의 임원은 차마 자신들이 타고 온 초대형 승용차에 선뜻 오르지 못했다는 후문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했지만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은 2003년 8월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 또 2009년 3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뛰어내려 사망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편 유독 검찰과 질긴 악연인 총수들이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8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 회장은 31년 회장직을 수행하며 5차례 검찰 수사를 받고 3번 수감됐다. 특히 이번 검찰과 공방전은 가장 치열해 수사를 지휘한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옷을 벗었고, 한화는 총수 구속의 여파로 이라크 신도시 건설 추가 수주 및 독일에서 태양광 사업 부진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최 회장은 이번이 네 번째 검찰과 악연이다. 1994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검찰과 첫 대면한 최 회장은 증거 불충분으로 일단락됐지만 이후에도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분식회계 및 이번 횡령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과 다투고 있다. 퇴진 논란에 빠진 한상대 검찰총장과의 친분관계에서 비롯된 의혹이 무죄를 주장하는 최 회장의 1심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당시처럼 10대 그룹이 우르르 부정에 가담하고 또 면죄부를 받는 식의 ‘원시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준법경영, 정도경영이 기업의 사활을 가르고 윤리경영, 착한 소비가 소비자 선택의 기준이 된 상황에서 검찰도 재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류정일 기자/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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