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봉수 명인이 일군 ‘3대 기적’
헤럴드경제| 2013-01-03 12:12

1972년 5월 5일
19세에 명인 등극

1993년 응씨배 우승
‘된장 바둑’ 돌풍

1997년 진로배 세계바둑 최강전
국제기전 첫 9연승


서봉수 명인은 치열하게 살면서 때론 좌절도 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화려한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잡초 같은 그의 승부사 기질은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둑사에는 서 명인의 ‘3대 기적’이 기록돼 있다.

서 명인은 자신의 최고 영광으로 1993년 응씨배 우승을 꼽는다. 당시 응씨배 결승전은 잡초의 생명력 하나로 버텨온 토종 바둑 서봉수 대 ‘일본 미학’의 수호자이며 우아한 귀족 바둑의 상징이라 할 오타케 히데오의 승부였다.

“큰 판에 명국이 없다고, 저도 실수를 많이 했고 상대방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지금 보면 부끄러운 대국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 명인은 이렇듯 겸손함을 보였지만, 그의 응씨배 우승은 일본 미학이 퇴조하고 ‘실전적 한국 바둑’이 세계를 휩쓰는 분기점이 됐다는 점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다. 서 명인의 응씨배 우승으로 한국 토종 바둑계는 일본의 위세에서 벗어나 최소한 대등하거나 우월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의 활약상은 획기적인 반란(?)이었다는 평가다.

앞서 1972년 조남철 명인을 꺾고 명인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서봉수 시대’ 서막을 알린 일이었다. 조 명인에 3대 1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서 명인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는 신예였다. 당시 명인전 우승은 최연소 타이틀(19세) 기록이었다. 나중에 이창호 9단이 89년 KBS바둑왕전 우승(14세 1개월)으로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기는 했지만, 바둑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었다. 

단체전에서도 불멸의 기록을 거뒀다. 1997년 진로배 세계바둑 최강전에 참가, 국제 기전 사상 처음으로 9연승의 위업을 쌓은 것. 세계 정상급들과의 대결에서 아홉 차례 연속으로 이기는 것은 극히 확률이 낮다는 점에서 그의 남다른 승부 근성은 바둑계에 한동안 회자됐다. 서 명인 역시 이 대회를 계기로 ‘한물갔다’는 평가를 불식하고 재기할 수 있었다.

서 명인은 훗날 자신의 바둑인생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그것도 피비린내나는 최전방에서”라고.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치훈 프로처럼 그 역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바둑 승부에 몰입했던 결과는 이 같은 3대 기적을 연출했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서봉수 명인은 치열하게 살면서 때론 좌절도 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화려한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잡초 같은 그의 승부사 기질은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둑사에는 서 명인의 ‘3대 기적’이 기록돼 있다.

서 명인은 자신의 최고 영광으로 1993년 응씨배 우승을 꼽는다. 당시 응씨배 결승전은 잡초의 생명력 하나로 버텨온 토종 바둑 서봉수 대 ‘일본 미학’의 수호자이며 우아한 귀족 바둑의 상징이라 할 오타케 히데오의 승부였다.

“큰 판에 명국이 없다고, 저도 실수를 많이 했고 상대방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지금 보면 부끄러운 대국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 명인은 이렇듯 겸손함을 보였지만, 그의 응씨배 우승은 일본 미학이 퇴조하고 ‘실전적 한국 바둑’이 세계를 휩쓰는 분기점이 됐다는 점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다. 서 명인의 응씨배 우승으로 한국 토종 바둑계는 일본의 위세에서 벗어나 최소한 대등하거나 우월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의 활약상은 획기적인 반란(?)이었다는 평가다.

앞서 1972년 조남철 명인을 꺾고 명인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서봉수 시대’ 서막을 알린 일이었다. 조 명인에 3대 1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서 명인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는 신예였다. 당시 명인전 우승은 최연소 타이틀(19세) 기록이었다. 나중에 이창호 9단이 89년 KBS바둑왕전 우승(14세 1개월)으로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기는 했지만, 바둑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었다. 

단체전에서도 불멸의 기록을 거뒀다. 1997년 진로배 세계바둑 최강전에 참가, 국제 기전 사상 처음으로 9연승의 위업을 쌓은 것. 세계 정상급들과의 대결에서 아홉 차례 연속으로 이기는 것은 극히 확률이 낮다는 점에서 그의 남다른 승부 근성은 바둑계에 한동안 회자됐다. 서 명인 역시 이 대회를 계기로 ‘한물갔다’는 평가를 불식하고 재기할 수 있었다.

서 명인은 훗날 자신의 바둑인생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그것도 피비린내나는 최전방에서”라고.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치훈 프로처럼 그 역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바둑 승부에 몰입했던 결과는 이 같은 3대 기적을 연출했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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