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반
“英 디자인학교는 과정·철학 중시…결과 아예 안보는 곳도”
뉴스종합| 2013-01-08 11:53
한국은 오로지 결과…취업에만 치우쳐
교수보다 각 대학교 시스템이 더 문제
학생 수 대비 교수 비율 비교도 안돼

글로벌기업서 두각 한국디자이너 많지만
이름걸고 활동하는 사람 없어 아쉬워



[런던(영국)=윤정식 기자]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디자이너들이 몰려 있는 영국 런던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코리안 디자이너들 8인방의 활약상이 영국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해 12월 초 영국 런던의 한식당 ‘가야’에서 8인의 30대 한국인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제품디자인 스튜디오 ‘롤리랩스(Roli Labs)’ 소속인 엄홍렬 씨는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공식시상대를 디자인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최민규 씨는 지난 2010년 영국 특유의 5㎝ 두께 3핀플러그를 10㎜ 두께로 접을 수 있게 만든 ‘폴딩플러그’로 영국 제품디자인 분야의 가장 큰 상인 ‘2010 올해의 디자인’ 대상을 받은 스타 디자이너다.

이 외에 세계적인 명품 시계회사 태그호이어(TAG Heuer)의 영국 내 디자인 자회사 ‘크리스토프 벨링 디자인(Christoph Behling Design)’의 김성국ㆍ박민후 씨, 뮤지컬 등 무대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네오스크리에이티브(NeosCreative)의 서지연 씨, 패브릭 디자인 업체 ‘샌더스 텍스타일(Sanders Textiles)’ 소속의 이규선 씨,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업체 TAG 소속으로 현재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ㆍRCA)’ 유학생 이혜원 씨가 주인공이다.

겉보기에는 여느 30대 직장인 못지않은 그들. 하지만 런던 한복팜에서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8명의 디자인 대사들이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민후, 김성국, 이규선, 서지연, 이혜원, 최민규, 엄홍렬 디자이너, 본지 윤정식 기자, 권세은 디자이너. 이들이 말하는 디자인 수도 영국의 현주소는 과연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한국과 영국 사이를 오가며 디자인적 감성을 발휘 중인 이들 8인의 수다를 들어보자.

-영국이 디자인 강국이 될 수밖에 없는 점을 현장에서 찾는다면.

“영국의 디자인 학교들은 한국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한다. 컴퓨터와 드로잉 실력이 좋으면 누구나 결과물은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지 않나? 한국도 최근 이런 방식으로 많이 변하고는 있는데, 영국은 한 가지 디자인을 준비하기 위해 설문자료부터 철학서적까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빵빵해야 한다 과정이 좋다면 결과를 아예 안보는 곳도 있다.”(김성국)


-여기서 유학을 마친 교수들이 한국 대학에 많이 있지 않나.

“교수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학교 시스템의 문제로 보인다. 학생 수 대비 교수의 비율이 워낙 차이나다보니 디자인 작업을 하기 전에 1대1 면담을 하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교수와 대화가 가능한 게 영국의 디자인스쿨이다.”(이규선)


-한국 디자인 산업의 롤모델로 삼은 게 영국이다. 영국 디자인계의 현실은.

“재정적자 때문에 좋은 시절은 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의 디자인 산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얼마 전 있었던 영국 내 산업디자인계의 포럼에서 나온 말인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존심 강한 영국 디자인업계 종사자들은 절대로 동양의 한 나라가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상이 되고 있음을 죽도록 인정하기 싫었겠지만 결국 인정한 꼴이다.”(최민규)

-왜 여기서 계속 일하고 있나.

“여기는 대기업이라는 게 없는 구조다. 사실 벌이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서 일하려면 수지 타산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들어가 안정적인 대기업 자리를 잡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것은 디자인 캐피털 런던이 내 감성을 키워주고 있음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서지연·권세은)

-현재 한국의 대기업들은 디자인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와있나.

“정말 많이 글로벌화됐다. 자신만의 디자인을 찾기보다는 글로벌화했다는 게 적중한 것이다. 디자인에서 지역색은 없어지고 있다. 좋은 디자인만 살아남는다. 즉 한국에서 한국 회사가 디자인을 했어도 전세계인이 좋아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박민후)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위상은 어떤가.

“사실 벤츠 BMW,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어느 기업을 가도 한국인 디자이너가 없는 곳이 없다. 한편으로는 한국인 디자이너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다. 아직은 진정한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취업용 디자이너만 늘어났다는 것이다.”(엄홍렬)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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