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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가치를 더하다...크라우드 펀딩, 십시일반 사각지대를 채우다
뉴스종합| 2013-01-17 06:59
2011년 10월 27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객석을 꽉 메운 콘서트홀에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이 묵직하게 울려퍼졌다. 악보없이 어둠속에서 음표를 따라 힘잆게 소리의 길을 열어가는 단단한 의지 앞에 객석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유일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단장 이상재) 단원 19명이 펼친 이날 연주는 70,80명의 풀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웅장함을 보여줬고, 기립박수를 4번이나 끌어냈다.

이 카네기홀 공연에는 익명의 다수 후원자들의 기부가 있었다. 180원부터 몇 만원까지 주머니를 털어 한푼, 두푼 모아진 금액은 500만원. 연주단원들의 항공료 일부로 쓰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가 된 크라우드 펀딩 3차 프로젝트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상재 하트시각장애인오케스트라 단장은 “당시 단원들이 돈을 내 공연을 소화할 정도로 한 푼이 아쉬울 때였는데 기부금이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다수의 후원자가 십시일반으로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우리사회 새로운 문화예술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예술위가 2011년 처음 도입, 실시한 크라우드 펀딩은 이 해 7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지난해에는 11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그 중 최다 기부액을 올린 프로젝트는 국립소록도 옹벽을 소록도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미는 ’아름다운 동행-소록도사람들’ 프로젝트. 90년간 한센인들을 수용해온 소록도에는 현재 700여명의 한센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50만명으로에 달할 정도로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바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당초 모금액은 30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119명이 참여해 목표액을 훌쩍 넘겼다. 현재 모금액은 3328만원으로 111% 초과달성이다. 지난 여름 LDT 무용단의 ’강수진과 친구들’ 이 함께 한 ’No CommentⅡ’에는 68명의 기부자가 참여해 500만원 목표액을 맞춰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다.



예술위는 실험모색기를 거쳐 올해에는 모금방식을 바꿨다. 첫해에는 모금액이 10원이라도 모자라면 지원을 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모금기간안에 달성하지 않더라도 최종지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가 올해에는 포털을 구축해 프로젝트 7,8개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기부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올해 3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성공사례가 쌓이면서 예술계의 관심도 높다. 2012년에는 11개 프로젝트 선정에, 63개 프로젝트가 신청,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예술단체를 후원하는 예술나무 키우기 운동도 뿌리를 내리면서 예술과 경영이 상생하는 새로운 문화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예술단체를 지원한기업은 종근당 크라운해태 등 97개 기업. 2005년 첫해 참여기업이 17개에 불과했던 것이 7년만에 100여개까지 늘어났다. 특히 중견ㆍ중소기업의 참여가 늘어 2011년 50개에서 73개로 증가했다. 종근당은 ’종근당예술지상’ 프로젝트를 통해 신진 미술작가의 국내외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크라운해태제과는 ’락음’ 국악단 초청 연주회를 개최, 전통 국악공연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벽산엔지니어링은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간 운영비를, 정보기술 부품을 제조하는 미래테크윈의 경우, 서울무용제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예술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절판된 책이나 특정 책을 재출간하는 북펀드도 인기다. 쟝르소설 출판사인 북스피어는 지난해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안주’의 마케팅 비용 5000만원을 독자 북펀드로 성공리에 모았다. 1구좌 10만원으로 모집 열흘만에 목표액을 채웠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도 출판사와 협업형태로 ‘독자 북펀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문학동네와 함께 진행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재출간 프로젝트의 경우 당초 목표 금액이었던 200만원이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두 채워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개인과 기업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않다.기부자들의 프로젝트 선호도가 사회적 관심을 끌 만한 프로젝트에만 몰리는 현상의 해소다. 기업들도 단발성 지원에서 벗어나 예술단체와의 결연을 통해 지속적 후원 시스템으로 가야 경영과 예술의 상생의 가치를 더할 수 있다.

모금주체자인 예술단체도 단지 지원을 기다리기 보다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프로젝트의 가치를 알리고 공감영역을 넓히는 노력과 함께 역량을 키우는게 필요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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