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선대본부장에서 초대 총리까지 朴의 남자 된 김용준
뉴스종합| 2013-01-24 15:12
‘선거대책본부장에서 인수위원회장, 그리고 초대 총리까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세번 째 선택을 받은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74)는 “최선을 다해 행정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50년 넘는 시간동안 판사에서 헌법재판소장까지 법조계를 지켜온 김 지명자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법조인 출신들이 즐비한 새누리당 내에서도 맏형 격에 속한다.

박 당선인과 김 지명자의 인연은 대선에서 시작됐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을 제안받고 선거 일선에서 박 당선인의 승리를 도왔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던 김 지명자는, 검정고시를 치러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19세의 나이에 사법고시(9회)에 수석 합격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졸업 직후 1960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서울지법과 서울고법 판사,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등을 거쳐 제2대 헌재소장까지 지냈다. 장애를 딛고 헌재소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인간 승리의 표본’ 그 자체인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김 지명자에 대해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소신파로 손꼽는다. 스스로가 신체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법조인답게 ‘법조문에 연연하기보다는 법이 현실과 맞지 않을 경우엔 고치는 게 맞다’는 소신을 지켜왔다. 대법관 시절 생수 시판을 허용하는 판결은 ‘현실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헌법소장 시절 내린 ‘과외 금지법 위헌 판결’은 ‘국민의 교육 받을 권리’를 중시한 소신 판결로 지금도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김 지명자는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악연이 더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ㆍ16 직후 ‘병역 미필자 공직 추방’ 방침을 세우고, 김 지명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또 김 지명자는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반대 글을 쓴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의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을 결정하는 ‘소신 판결’로 맞서기도 했다.

2000년 헌재소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은 후에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지내는 등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쏟았고, 그 공로로 2011년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지명자는 “평생 법을 전공하고 법률을 다뤄온 만큼, 법과 질서로 지배하는 사회로 우리나라가 가야한다”는 소신과 향후 총리직 수행의 큰 원칙을 강조했다.


<약력>

△서울(74) △서울대 법학 학·석사 △제9회 사법고시 합격 △대구지법·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가정법원·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제4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국민원로회의 사회통합분야 위원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변호사 △새누리당 18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위원장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위원장

최정호 기자 choijh@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