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기피 대상된 일인지하 만인지상 “후보 거론도 싫어”
뉴스종합| 2013-01-31 11:29
“거론도 하지 말라.” “입각 안할 것.”

최근 차기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의 말이다. 후보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총리자리가 어느덧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0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과 만나 “좋은 인재들이 인사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전후로 상당수 총리ㆍ장관 후보자들이 스스로 고사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다. 이런 박 당선인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력한 총리 후보자로 일찌감치 거론됐던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31일 공보실을 통해 “당선인으로부터 총리직 제안도 받지 않았고, 제안이 오더라도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에도 청렴함으로 명성이 높았고, 퇴임 이후에도 로펌이 아닌 편의점과 채소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소탈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수차례 총리 적임자로 거론됐지만, 매번 고사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공보실을 통한 입장 발표 역시, 김 전 총리 후보자 사퇴 이후 다시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심지어 박근혜 당선인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인사들조차 공직 제안을 고사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 총리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안대희 전 정치쇄신위원장은 대선 직후 사무실까지 비우고 일본과 미국으로 떠났다. 주변에서는 안 전 위원장이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몸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담당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한 강연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약 실현은 앞으로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의 몫”이라며 “내 역할은 선거 때로 끝났다”고 입각할 뜻이 없음을 잘라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간 차기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총리, 또는 장관 후보로 제안받은 상당수 인사가 고사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식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금 의외로 요청을 받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선인이 누구를 쓰겠다고 해서 당선인의 마음만으론 잘 안 된다. 본인이 승낙을 해 줘야 한다”고 전했다. 인사청문회 자체에 대한 부담, 또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때로는 사실이 아닌 의혹 만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재상이라는 명예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구설수 끝에 총리 후보자 자리를 스스로 버린 김용준 전 후보가 사퇴의 변 말미에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 인사청문회가 원래의 입법취지 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