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돈 된다는 그림엔 애정이 안가…마음에 와 닿는 그림만 모았죠”
라이프| 2013-02-05 10:57
서울대 치대를 나와 연세대 치대 교수(교정학과)로, 또 강단을 떠나 여의도에서 유명 치과의원를 운영했던 이명숙 박사(69·사진)가 젊은 시절부터 모은 그림으로 소장품전을 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예화랑(대표 이승희ㆍ김방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의 타이틀은 ‘마음 속의 천국: 어느 컬렉터의 이야기’. 지난 40년간 하나둘 모았던 그림 200여점 중 70점을 내걸었다. 이 씨는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환자를 진료하다가도 점심시간이면 샌드위치 하나 사 들고 인사동으로 달려가곤 했지요. 일주일에 한두 차례 이렇게 화랑 순례를 하고나면 가슴이 뻥 뚫렸어요. 일종의 탈출구였죠. 그렇게 사 모은 그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어 용기를 내봤습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서양화가 이준(94) 화백의 장녀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 있던 미술서적과 아버지의 물감 냄새를 맡으며 자란 영향도 있겠지만, 그림이 마냥 좋았다고 했다.

또 남편(국제법 전공의 서울대 법대 백충현 교수) 역시 그림을 좋아해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전시를 열게 된 것도 2007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남편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함께 그림을 사 모으고, 감상하며 행복해 했던 순간을 기록한 책자도 펴냈다.
 

이 씨가 가장 먼저 구입한 그림은 남관(南寬) 화백의 1965년작 ‘고훈(古薰)’이다. 돌담에 낀 이끼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연세대 치대 강사로 일하던 1970년대 중반 남관 선생의 개인전에서 구입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선생님께 ‘출품작 중 가장 좋아하시는 그림이 어떤 거냐’고 여쭸더니 ‘저거’라고 하셨죠. 1년치 봉급을 털어 샀는데 지금 봐도 좋아요.”

이후 그는 국내ㆍ외 작가를 가리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수집했다. ‘마음에 와 닿고, 계속 눈길이 가는 그림을 산다’는 게 원칙이다. 이 씨는 “더러는 눈이 아니라, 귀로 그림을 사는 이들이 있더군요. ‘누구누구 그림이 돈이 된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요. 그러나 그렇게 산 그림은 애정이 안 가 오래 보유하기 힘들어요”라고 했다.

그는 부친인 이준 화백의 그림도 몇점 갖고 있다. 단, 아버지에게도 작품값은 지불한다. “그림을 가져가려 하면 아버지께서 ‘얘야, 물감 값은 줄 거지?’하고 물으시죠. 그래서 ‘패밀리 프라이스(가족 특가)’로 삽니다.”

이번 소장품전에는 이준 화백의 회화를 비롯해 권옥연, 배륭, 곽훈, 황주리, 이정웅의 그림이 나왔다. 또 중국작가인 장샤오강, 샤갈, 달리, 데미안 허스트 등 외국작가의 판화도 내걸렸다. 문신, 유영교, 한진섭, 천선명의 조각도 볼 수 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묻자 이청운의 1987년작인 ‘몽마르트르의 지붕’을 꼽았다. 파리에서 열렸던 살롱 도톤느에서 수백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그림으로, 혼자 보기 아깝다고 했다.

그는 사들인 작품을 되판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작품 판매는 하지 않는다. “나중에 제 컬렉션을 누구에게 남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누구든 작품을 잘 관리하고,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에 남기고 싶습니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02)542-5543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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