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입법ㆍ사법ㆍ행정 올스톱... 朴당선인 입만~
뉴스종합| 2013-02-06 11:23
[헤럴드경제=최정호ㆍ신대원 기자]"오늘은 합니까"(기자들) -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지켜봐주요"(박근혜 당선인측)

당선 45일, 정부출범까지 불과 19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6일 오전, 취재진과 박 당선인측간은 며칠째 계속되는 추궁성 질문과 회피성 답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당선인측 관계자는 이날도 "저희도 잘 모르겠다. 거의 마무리단계라는 것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이 내일이 되고, 또 내일은 모레가 되는 ’인선 제로’사태가 지난달 김용준 총리후보자 중도사퇴이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박 당선인의 입만 쳐다보면서, 마비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행정부는 손놓고 복지부동 = 현 정부 국무위원들은 퇴임 이후 고민에 들어갔지만 후임 인사는 여전히 안개 속이라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 복지부동에 빠져들고 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주재할 국무회의는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이 대거 참여한 상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주재 첫 국무회의 때도 3명의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장관들이 대신하는 기형적인 장면이 연출된 바 있다.

새로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어디서 근무하게 될지조차 불투명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세종시와 과천시, 해양수산부는 세종시와 부산시가 유치를 둘러싸고 지역간 갈등마저 빚고 있다. 국토부에서 해양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우리가 무슨 동네북이냐"면서 "결정이 되야 이사를 가던지 말던지 할게 아니냐"고 답답해 했다.

외교통상부는 북핵문제와 일본의 독도전담부서 설치 등 굵직한 현안이 터졌지만 통상업무 이관을 놓고 인수위와 충돌 양상을 빚으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다. 자칫 국정과제를 수립하고 추진력을 불어넣어야할 새 정부 초반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중앙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업무 연속성과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중요한데 장관 인사 등 일정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헌재소장 공백 15일째 = 사법부 역시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채면이 있는데로 구겨진 형국이다. 사실상 새 정부의 첫 사법부 인사였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온갓 오명만 남긴 채, 청와대와 대통령 당선인, 그리고 국회의 공 떠넘기기로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업무에도 차질이 계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송두관 재판관이 소장대행으로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문제는 송 대행 체제도 길어야 40여 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송 재판관의 임기도 40여 일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인사 파동 사태가 조속하게 마무리 되지 못할 경우, 자칫 헌재 파동 사태가 불가피한 현실이다. 참여정부 당시 전효숙 재판관 임명 동의안 처리 여부를 놓고 140일이나 공백 사태를 만들었던 악몽이 재현되기 직전인 셈이다.

파동의 당사자인 이 후보자의 버티기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현 대통령, 새 대통령 측 어느 누구도 나서 자진 사퇴를 권고하기를 꺼려하는 가운데, 국회까지 표결 처리에는 무관심한 모습이다.

검찰도 답답한 심정이다. 두 달 넘게 검찰총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지만, 차기 총장이 언제 임명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대검 중수부 폐지 및 공수처 신설 등, 검찰 조직 자체를 뒤흔들 개혁안을 놓고 여전히 신경전만 계속하고 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최근 문제 인사들이 사법부 출신에 집중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큰 상황이다.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인간승리, 또는 청렴결백한 인사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줄줄히 여론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오명만 남기면서, 사법부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됐다는 하소연이다.

최근 예상 내각 조각 명단에 현직 사법부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질서와 안전을 중시하다보니 법조인들을 등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되는 사법부 인사들의 행정부 고위직 발탁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덤터기 쓸라"안절부절 입법부 = 국회도 연일 비상이다. 새 정부 출범이 불과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총리도 장관 후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중간에 낀 설 연휴까지 감안하면, 자칫 새 정부 출범에 뒷다리를 잡았다는 오명만 뒤집어 쓰기 쉽상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인사청문회를 얼렁뚱땅 해치울 경우 “밥값도 못하는 거수기” 비난만 들을 수 있다. 진퇴양란이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6일 “최장 20일이 걸리는 청문회 일정을 고려하면 어제 인사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지연에 여당 역시 당혹해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일주일 정도로 예상되는 인사검증 기간까지 고려하면 늦어도 설 연휴 전인 이번 주 안으로 발표가 이뤄져야, 취임식 전 총리라도 마무리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야당에게 사전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앞으로 발표될 후보자가 큰 하자가 없다면, 최대한 조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민주당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총리 후보자 발표가 늦어지면서 생긴 국정혼란 사태를 전적으로 야당 책임으로 돌리려는 꼼수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가 “취임식이라는 시한까지 청문회가 안 되면 그 이후에 하면 된다”고 엄포를 논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아무리 협조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박 당선인이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20명이 넘는 장관 및 주요 요직 인사에 대한 청문회는 산 넘어 산이다. 총리 후보자 발표 이후, 형식적으로라도 재청 절차를 밟으면 또 다시 하루 이틀이 소요된다. 이후에나 국회는 인사청문회 일정을 잡게 된다. 사실상 25일 대통령 취임식 이전 청문회 마무리는 불가능한 셈이다.

정부조직개편안도 입법부의 속을 태우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박 당선인은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선인과 새누리당, 민주당 사이 조율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새 대통령과 새 장관이, 사라질 부서에서 당분간 일하는 이상한 일이 국회 때문에 생겼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수 있는 상황이다.

최정호ㆍ신대원 기자 /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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