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자영］우표는 시(詩)가 된 역사서다. 한 국가의 수백만 대소사에서 몇 개 주제를 골라내 간결하고 함축적인 이미지를 풀어낸다. 3x3㎠ 작은 화폭 너머에는 무한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발매된 박근혜 18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는 국내 우표디자인의 수장격인 우정사업본부 모지원 디자인실장이 맡았다.1999년 입사해 15년 차에 접어든 모 실장은 국내 최초로 여성대통령 취임우표를 디자인한 여성 디자이너가 됐다.

대통령 취임기념우표 제작은 당선 이후 1~2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완성해야 하는 고강도 업무다. 모지원 실장은 “15년간 일 때문에 몇 날밤을 새보기는 처음이었다”며 “두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 당선이 결정된 다음날부터 그는 본격적인 우표 디자인컨셉 구상에 들어갔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점과 박 대통령만의 차별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전제했고, 다행히 대통령 인수위와 의견이 일치했다. 모 실장과 인수위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당의 색깔을 함축하는 디자인을 위해 십여차례 이상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컨셉을 잡아갔다. 


최종 시안은 기존 대통령취임식 우표들에 중점이 됐던 태극기ㆍ백두산 천지ㆍ올림픽공원ㆍ무궁화 배경을 배제하고 최대한 인물을 중점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연한 파스텔톤으로 고전적이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살리고 부드러운 선의 미학이 드러난 구름문양을 넣어 박 대통령의 분위기를 재현하려고 했다.

취임기념 우표와 함께 발행된 기념우표첩에는 소형시트, 전지와 함께 박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 시절 등이 14장의 우표 속에 담겼다. 모 실장은 “박 대통령의 일생을 국민들이 지켜봐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분”이라며 “이 스토리를 최대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60년 동안의 변천사를 우표에 담아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기념 우표도 참고했다.

최종안은 물론 14장의 일대기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 14장 사진에는 청와대에서 생활하던 시기와 정계 진출 이후의 사진만이 선택됐다. 단순한 한 개인의 일대기 이상의 기준이 고려된 것으로 짐작된다. 모 실장은 “최종컨셉이 결정되기까지 피드백이 오가는 과정이 섬세하고 천천히 진행됐다”고 회상했다.

이번 18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는 판매 이틀만에 물량 200만장이 모두 동나며 인기를 끌었다. 판매 첫날에는 주요 우체국은 우표를 사기 위해 100m이상 줄이 늘어선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모지원 실장은 ‘편지 쓰는게 좋아서’ 해외 펜팔을 하다가 우표라는 세계를 처음 접했다. 작은 네모에 담긴 세계문화의 정수(精髓) 보면서 우표 밑에 새겨진 디자이너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어린 날 막연한 꿈을 현실로 바꾸어낸 그의 이름 석자는 18대 대통령취임기념 우표 아래에 새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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