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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苦 · 아프苦 · 외롭苦…기러기 아빠 세번 운다
뉴스종합| 2013-03-12 11:34
버는돈 모두 유학비 보내고
혼자서 술로 외로움 달래다
믿었던 아내의 외도로 이혼

우울증에 극단적 자살 까지
자식 위한 선택이 비극으로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바람에 아내와 자식을 해외로 내보내고 국내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기러기아빠’들이 오랜 고독과 생활고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10년째 ‘기러기아빠’로 지내던 50대 치과의사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치과의사 A(50) 씨가 아내에게 남긴 유서엔 “한국에 와서 잘살 자신이 있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미국에 남아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까지 아내와 자식의 한국 생활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2010년 10월엔 아내와 두 딸을 미국에 유학 보낸 40대 가장이 목을 매 숨지기도 했다. 10년간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며 학원을 운영하던 B(46) 씨는 학원이 경영난을 겪자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기러기아빠 생활 5년차인 이중혁(가명ㆍ49) 씨는 “누구든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겠다면 말리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씨는 하교 후 학원을 전전하던 외동딸이 안쓰러워 5년 전 딸을 캐나다로 아내와 함께 유학 보냈다. 그러기를 몇 해, 딸은 어느새 대학 2학년생이 됐다. 5년간 이 씨를 괴롭힌 것은 외로움이 다가 아니었다. 문제는 학비와 생활비였다. 대기업 간부로 있지만 월급만으로는 매년 1억원에 가까운 유학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빚도 지고, 한때 더블잡(Double Job)을 뛰기도 했다. 가족이 그리웠지만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1년에 한 번 캐나다를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쏟았지만 그는 결국 2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 생활비 송금 문제로 다툼이 잦았던 탓이다. 아내는 한국에 돌아와 따로 살고 있고, 딸은 여전히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딸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결과가 이게 뭔지….” 이 씨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 선택이 가족을 뿔뿔이 흩어져 살게 했다”며 “처지가 분통해 술에 의지하게 되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빠져들곤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을 가진 기러기아빠들의 비율이 같은 연령대에 비해 2~3배 높고, 알코올중독도 더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러기아빠도 가족만을 위한 삶보다는 자신을 위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장은 “기러기부부가 외도나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족은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외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는 가구는 245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1733만9000가구)의 14.1%에 달하고 있으며, 이 중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이른바 ‘기러기가구’는 115만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체 결혼가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10년 전인 2000년 5.9%에 비해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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