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양당 대표가 각종 정국 현안에 떠밀려 ‘존재감 제로’ 상태다. 정부조직개편안과 청문회 처리를 사이에 둔 청와대와 야당의 ‘기싸움’ 형국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귀국 이슈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을 휩쓸어버렸다. 문 비대위원장의 ‘중대결심’ 발언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 정도다. 국회의 두 축인 여야 대표의 ‘리더십 부재’에 ‘국회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 정치의 상징’ 안 전 교수의 귀국도 마침 때를 같이한다.
새누리당 내에선 ‘당대표=해결사’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최근 구도에선 오히려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의 실무자인 원내대표의 입김이 더 세다. 황 대표가 정부조직법 논란의 해결사로 나섰는데 일이 더 꼬여버리자, 당내에선 그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같은 리더십 부재는 황 대표의 당내 재량권이 적다는 것이 첫째 원인이다. 한동안 새누리당의 구심점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당대표보다 대통령이 될 차기 대권주자에게 힘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의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비대위원장 시절 박 대통령 스스로가 “모두 제 입만 보고 계신 것 같다”는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번 협상과 관련, “사실상 황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게 없다. 청와대의 의지가 중요한데, 그 뜻에 변화가 없으니 협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존재감의 부재는 황 대표의 스타일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편이 아니다. 대선기간엔 박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드는 참모 이미지로 ‘강력한 구심점’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비대위원장의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문 비대위원장은 지난 8일 “모든 책임을 지고 거취에 관한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조직개편안 처리를 두고 청와대와 야당이 ‘강대강’ 대결구도가 장기화하자 문 비대위원장이 던진 ‘승부수’였다. 문제는 그가 던진 승부수의 파장이다. 제1야당의 대표가 ‘직을 걸든 말든’ 정치권은 문 비대위원장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문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두 달여도 남지 않았다. 오는 5월 4일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대표가 뽑힌다. 두 달도 남지 않은 비대위원장 직에 정치권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귀국한 안 전 교수는 ‘새 정치의 씨앗’ ‘뜻을 함께할실 분’ 등을 언급하며 야권발 정계개편을 예고했다. 야권의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의 귀국은 야당의 비대위원장보다 훨씬 비중 있게 대중에 다가간다.
‘꿈쩍 않는 청와대’도 문 비대위원장의 존재감을 삭감시켰다. 청와대는 정홍원 총리를 비롯한 새 정부 첫 조각에서 단 한 명의 낙마자도 없이 ‘전원통과’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고, ‘심판자’ 민주당은 문제 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전원 통과를 축하해줘야 할 판이 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치권의 이슈를 외부에 뺏겨버린 상태”라며 “야당은 4월 보궐선거 전까지, 여당은 좀더 길게 정치권의 이슈 바깥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석희ㆍ조민선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