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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해외 투기자본 공격시 우리의 전투력은?
뉴스종합| 2013-03-22 06:52
[헤럴드경제=하남현 기자] # “한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라. 즉시 팔아치우고 빠져 나오라”

20XX년 한 헤지펀드가 전세계 투자기관들에게 긴급 전문을 날린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진다. 코스피 지수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급등한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며 경고음을 울려대고 신용평가사들은 대한민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다. 자금의 탈출은 계속된다. 엑소더스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1997년 12월3일 그날처럼 제2의 경제 국치일(國恥日)을 맞이하게 된다.

해외 투기자본이 우리나라를 겨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우리 경제의 붕괴 과정을 지난 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와 비슷한 과정으로 상정해 요약한 시나리오다.

외환위기의 주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당시의 정경유착, 차입경영, 금융부실, 부패관행 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하지만 투기 자본의 존재 역시 외환위기가 발생한 데 큰 영향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해외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며 은행 딜링룸이 전쟁터로 변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 경제의 위기대응 능력은 얼마나 강화됐을까?

전문가들은 지난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력’이 커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금 모으기’에 의존해야 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는 여러 경제지표로 확인된다.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기업들의 위기대응 능력이다.

1997년 평균 400%를 훌쩍 넘었던 기업 부채비율은 현재 1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안정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29.8%) 때보다도 한결 낮은 상태다. 외환위기의 전조였던 한보, 기아차 부도 등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IMF 구제금융 신청 직후인 1997년 12월말에는 204억달러에 불과했으나 올 2월 현재 3274억달러로 16배가량 불어났다. 외환위기 당시 달러가 바닥나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에 구걸하고 심지어 국민들이 금 모으기에 나서야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원ㆍ달러 환율은 외환 위기때 달러당 2000원 수준까지 급등하는 등 가파르게 치솟았지만 국제수지 흑자 등으로 꾸준히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1110원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대외거래가 늘고 외환 자유화 조치가 확대됨에 따라 외환시장의 규모도 커졌다. 1997년 하루 평균 20억달러 미만이던 은행간 외환 거래가 지난해에는 453억8000만달러로 가파르게 뛰었다.

채무 건전성도 개선됐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가 외국에 갚아야 할 돈은 4134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받아야 할 돈이 그보다 1225억달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단기외채 비중은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30.6%, 단기외채 규모도 6년 만에 최저치다. 한국은행 측은 “채무 건전성이 개선된 것은 외환규제와 함께 통화 당국의 준비자산, 은행들의 단기차입금 상환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국제수지를 보면 외환위기 전 만성적 적자구조를 보였던 경상수지는 흑자구조로 돌아섰고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수출시장의 다변화 등에 따라 상품수지가 외환위기 전에 비해 안정적인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외환위기 당시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내려갔으나 지난해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단계 올리는 등 안정된 경제 펀더멘탈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개방도가 높은 탓에 해외 자본 유출입에 따라 단기적으로 금융 시장이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경제가 불황에 접어들 경우 ITㆍ조선 등 한국의 주력 업종이 큰 타격을 입고 이것이 실물ㆍ금융 양 분야 모두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영업이익률은 15.4%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2008년에는 5.7%로 급감한 바 있다.

조동철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김현욱 SK경영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경제 세계화와 우리 경제의 위기대응역량’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의 결과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몰라보게 개선됐다”며 “가장 강조해야 할 부문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자본 유출입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채권거래세, 외환거래세 등 신규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자본 유출입은 주로 포트폴리오 투자 자금으로 투자 자본은 수시 유출입으로 인한 변동성이 매우 높아 안정성이 취약하다“며 “새로운 과세제도 등을 도입해 급격한 자본 유출입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airins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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