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
가족, 코 끝 알싸~한 그 이름
라이프| 2013-03-21 11:33
‘가족’이란 두 글자는 많은 사람에게 뭔가 애틋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인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집단, 설령 그것이 꼭 같은 뿌리가 아니더라도 가족으로 맺은 연은 무량한 억겁의 시간 동안 쌓아온 소중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에 어렵지만 쉽게 극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가족’과 ‘사랑’이다. 창극 ‘서편제’와 연극 ‘콜라소녀’는 가족이란 소재와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작품. 두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게 될까.

▶소설, 영화, 드라마, 뮤지컬에 이어 창극으로 만나는 ‘서편제’=송화의 득음과 명창의 탄생, 하지만 그것보다 이야기의 주된 요소가 되는 건 송화, 동호, 유봉의 애틋한 가족간의 사랑 이야기다.

‘서편제’가 창극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소리꾼의 이야기이고 소리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긴데 다루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창극으로 만들려고 생각했던 작품이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원작 소설인 이청준의 ‘서편제’와 ‘선학동 나그네’ 두 작품을 모티브로 많은 부분이 각색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했던 것은 송화가 눈이 멀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 것이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송화를 눈멀게 하는 아버지의 동기가 약하다”며 “송화와 동호 남매간의 정이 남녀간의 정이 되는 것을 우려한 아버지 유봉의 결단으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창극 ‘서편제’의 노년, 중년, 어린 송화.                                                              [사진제공=국립극장]

눈이 멀게 된 송화는 절규한다. 그때 나오는 것이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 눈먼 송화가 부르는 심청가는 절묘하다. 극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 쓴 윤호진 연출은 처음 창극 연출을 맡은 만큼 창극에 작창(作唱)을 빼는 시도를 한다. 대신 극적 상황에 맞는 판소리나 민요의 여러 대목을 뽑아 사용하며, 이번에 노년의 송화를 맡은 안숙선 명창이 도움을 줬다.

유봉이 애 딸린 여인과 결혼해 아들로 삼은 것이 동호, 다른 여인에게서 낳은 자식이 송화, 피로 맺어지기엔 끈끈하지 못한 관계지만 가족이 된 세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유랑했다. 그래서 소설과 달리 연결고리가 된 건 ‘어머니’의 이미지다. 박애리가 연기하는 어머니는 결정적인 순간 동호와 유봉의 행위의 동기가 되며 학의 이미지로도 형상화된다. 학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 유봉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편제’는 소리를 하는 무대 위 그들의 이야기다. 득음을 위해 소리의 길을 걷는 이들, 소리꾼의 희로애락은 단원들이 겪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면 불가능하죠. 소리꾼이니 가능한 겁니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장점이죠”라고 김성녀 감독은 말한다. 자신들 이야기이니 단원들도 신났다. 윤호진 연출은 “숨겨진 재능들도 많아서 자기들이 추임새도 넣어보고, 그냥 두면 쉬질 않는다”고 했다.

“진실된 자기 감정이 있으면 관객도 반응할 것”이라며 창극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 윤호진 연출. 그를 돕는 것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의 삽입곡을 만들고 지난 대통령 취임식에서 ‘아리랑 판타지’를 선보인 양방언이다. 현대와 전통을 절묘하게 섞어 세련됨으로 승화하는 그가 이번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영상이 대신한다. 봄을 닮은 송화의 어린 시절은 변화무쌍한 여름이 되고 만추가 되고 노년은 겨울이 된다.

그렇다고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호진 연출은 창극이 처음이고 뮤지컬과 달리 창극은 소리를 주고받는 단선율로 하모니가 없다. 중간에 작가도 변경되고 윤호진 연출과 양방언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하는 바람에 준비가 빠듯했다.

“소리를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는 김성녀 감독. 그래도 그 소리꾼들의 이야기 속엔 가족과 사랑 이야기가 가득하다.

창극 ‘서편제’는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콜라소녀’.                                                                                            [사진제공=코르코르디움]

3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 연극 ‘콜라소녀’=제목만 들어서는 사춘기 소녀의 톡톡 튀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실제론 할머니와 세 아들, 세 며느리, 손녀와 할머니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큰아들이 환갑을 맞아 두 동생 내외가 시골 고향집을 찾아왔다. 이날은 배다른 누이동생 명희의 기일이기도 하다. 형편 때문에 재산을 두고도 티격태격하는 두 형제. 삼형제가 모인 자리에 어머니 눈에만 보이는 소녀가 있다. 세상을 떠나 없지만 노모에겐 생생히 살아 있는 딸. 어머니에겐 사랑을 듬뿍 주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명희는 가족의 사랑을 얻기 위해 살았고 그 사랑을 조카에게 줬다.

무덤덤한 큰아들과 어머니를 잘 모시는 둘째아들, 냉정한 막내아들. 어른인 큰며느리와 철없는 둘째며느리, 싹싹한 막내며느리, 가족간에 다툼도 있지만 끝은 화해로 하나가 되는 것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없지만 특별한 날을 맞은 그들의 하루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연극 ‘콜라소녀’. 지난해 서울연극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참가했다. 연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의 김숙종 작가와 극단 작은신화의 최용훈 연출이 만난 작품.

알싸한 콜라의 느낌. 김 작가는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과 애잔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마루와 갈대숲, 날아가는 나비, 연극은 소박하고 일상적이지만 어쨌거나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콜라’란 단어가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보고 나면 콜라 한 잔을 들이켠 듯한 콧속 자극과, 뭔가 다른 느낌의 청량감이 있는 연극.

‘콜라소녀’는 다음달 14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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