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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캔드)버냉키 vs 소로스 전쟁…투기자본, 금융의 훼방꾼인가, 필요악인가?
뉴스종합| 2013-03-22 06:57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그가 움직이면 멀리서도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표현한 말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으며 소로스를 ‘자본주의의 악마’에서 ‘귀 기울여야 하는 경제예측자’로 돌려세워났다. 반면 미국 경제 수장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세계 경제 관리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으로까지 낙인이 찍혔다.

▶‘족집게’ 소로스…‘오발탄’ 버냉키=헤지펀드인 ‘퀀텀펀드’를 이끄는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략해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무력화시키고 15억달러의 차익을 올리며 세계 금융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7년 태국 바트화와 말레이시아 링깃화를 집중 공략, 동남아 금융위기를 확대시켰다. 1992년 우리나라에도 투자했다가 1997년 투자금을 회수하며 한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소로스가 ‘족집게 경제 예측자’로 탈바꿈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다. 당시 소로스는 “지난 25년간 지속돼온 ‘슈퍼버블’이 붕괴하고 있다”며 “미국은 물론 유럽,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 재앙이 닥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버냉키 의장이 “미국의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확장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경기 하강 위험은 크게 줄어 경기침체 가능성은 낮다”는 비교적 낙관론을 펼치고 있는 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결과는 소로스의 승리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았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다.

버냉키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였던 장 클로드 트리셰는 “유럽의 금융기관은 정부 지원이 필요없을 정도로 건전하다”며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해 빗나간 예언에 합류했다.

▶‘그림자은행’의 성장과 관리 감독의 필요성 대두=이는 소로스와 버냉키 개인의 경제예측 역량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투기자본으로 매도당했던 ‘그림자은행(shadow banking system)’에 대한 인정과 관리 감독의 중요성이 부각된 반면 달러 기축통화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 패권을 장악했던 미국 선진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림자은행’이란 은행과 유사한 신용 중개기능을 제공하지만 시중은행처럼 엄격한 규제 체계와 명확한 공적 보호장치가 적용되지 않는 유사 금융을 말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와 신용 부도 스와프, 환매조건부 채권매매(Repo), 증권대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통한 과도한 레버리지로 부실 규모가 확대되면서 그 실체가 부각됐다.

1985년 영미 금융 자유화에 의해 탄생된 그림자은행은 1994년 멕시코 금융위기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커져 더 이상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주요 20개국(G20) 산하 재무장관 회의인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2002년 26조달러였던 그림자은행의 세계 총 규모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지난해말 67조달러까지 증가했다.

FSB는 “그림자은행은 전체 세계 금융 자산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며 “그림자은행 규모가 금융시장에 대한 구조적 위험을 높이고 있어 만약 유동성이 증발할 경우 시장의 과다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그림자은행의 규모가 빠른 속도로 확대됨에 따라 금융 위기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는 실정이다. 결국 G20 정상들은 FSB에 권한을 부여해 그림자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또 FSB는 증권대차와 환매조건부 채권매매에 관한 13개의 권고안을 제시하는 등 관련 상품에 대한 규제의 틀을 구축해가는 상황이다.

▶그림자은행은 필요악?=G20가 그림자은행에 대한 인식 제고와 규제 및 감시활동에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그 시행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여전하다. 또 지난 1월 그림자은행의 무분별한 외환거래를 막기 위해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등 11개국이 ‘토빈세’인 금융거래세 도입을 합의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국제투기자본의 규모가 몇몇 개국의 규제 강화로 통제될 상황이 아니며 전 세계적인 규제 강화와 각 나라 정치권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강력한 글로벌 금융 거버넌스가 없는 상황에서 투기자본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특정국가가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면 투기자본들이 통제가 없는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헐값에 그 나라 자산을 강제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 산업 중 금융산업 비중이 큰 미국과 영국이 투기자본에 강력한 규제를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림자은행의 확대를 방지하고 금융위기가 재발할 경우 실물경제로 피해가 파급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금융개혁법(도트 프랭크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제정과정에서 금융권의 로비를 받은 의원들에 의해 골자가 빠지고 그림자은행을 규제하는 힘을 잃게 됐다.

또 미 FRB는 실물경제를 살리고 그림자은행의 커진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적극적인 양적완화(QE3, QE4)에 나섰지만 오히려 부채 규모만 급증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그림자은행의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장해일 예탁결제원 투자서비스본부장은 “그림자은행이 지닌 위험성에 비춰볼 때 규제 강화는 불가피해 보이지만 효과적인 자금 조달과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순기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과도한 규제보다는 적정한 규제 수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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