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속작가제 도입,아틀리에 조성 등…작가와 함께해온 30년
라이프| 2013-04-23 09:33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나보다 먼저 화랑에 취업한 고교(경복고) 동창의 권유로 1978년 9월, 고려화랑이라는 곳에 첫발을 디뎠어요. 그런데 석달이 지나도록 그림을 단 한 점도 못팔며 계속 헛탕을 쳤죠. 그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간신히 첫 비즈니스를 성사시켰어요. 아마도 성탄절까지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니까 작품을 사주신 것같아요. 그리곤 1983년 관훈동 한 건물 2층에 작은 화랑을 만들었죠. 그게 출발이었어요. 일반에 소개 안된 작가들을 주로 선보였는데 훌륭한 작가들을 만난 게 제일 큰 보람입니다”

화랑 개관 30돐을 맞은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59)은 화랑 입문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여성 화랑주들이 국내 화랑계를 이끌던 1980년대초, 패기와 열정만으로 화랑을 꾸려가며 전속작가제 도입, 작가아틀리에 조성, 해외 진출, 신영역 개척 등 많은 일을 해온 이 회장은 가장 잊지 못할 작가로 고암 이응노화백(1904~89)을 꼽았다.

“프랑스에 동양 수묵화의 오묘한 세계를 전파한 고암을 만나기 위해 1985년 화실로 찾아갔죠. 그랬더니 ‘이리 젊은 사람이 화랑주인일 리 없다’며 등을 돌리셨어요. 두번째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당시 고암은 동백림사건 때문에 한국선 금기시됐던 작가였는데, 저를 중앙정보부 공작원으로 오해하신 겁니다. 세번째 찾았을 때에야 비로소 작품들을 보여주셨죠. ‘까딱하다간 이 모든 작품이 잊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걸 보시곤 선생께서 ‘그림을 이리 좋아하는 걸 보니 진짜 화랑하는 사람 맞구먼’ 하시면서 이후론 모든 걸 맡기셨죠.”


광주민주화 항쟁을 표현한 고암의 ‘인물군상’ 등을 받아들고 귀국한 이 회장은 ‘잊혀진 작가’를 다시 알리기위해 뛰었다. 이미 민중미술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주며 후원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던 그가 ‘사상이 불온한 작가’로 꼽히던 고암 이응노의 전시까지 열 경우 어찌될지 모를 상황이었다. 다행히 민주화의 물결이 더 도도해졌고, 1989년 신년벽두 서소문 호암갤러리에서 고암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개막됐다.
 
오수환 Variation, 124x107cm, Oil on canvas, 2012                                          [사진제공=가나아트]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개막식 테이프 커팅이 막 이뤄지던 1989년 1월 10일 오후, 선생이 돌아가셨어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다행히 고암이 남긴 작품들은 그 순간 다시 새 생명을 얻었죠”


중견화가 박영남(63)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1982년 첫 해외출장지로 뉴욕을 택한 이 회장은 늦깎이 유학생이었던 박영남을 만나 주머니에 있던 달러를 모두 꺼내주었다. “나중에 그림으로 갚으라”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박영남은 아직도 그 때 꾼 돈을 갚지않고 있다. ‘정산’의 기회를 놓친 것. 박영남은 “가나화랑은 내게 백지수표”라 하자, 이 회장은 “박영남은 가나의 1호 전속작가”라며 “30년 기념으로 정산을 마무리져야 할텐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가 사석원(53) 또한 가나와 인연이 깊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석원은 그림을 1톤 트럭에 싣고 무작정 이 회장을 찾아갔다. 파리 유학시절, 가나가 FIAC(아트페어)에 국내화랑으론 유일하게 참여한 것을 보고 “이 화랑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사석원은 “되돌아올 운임도 없이 출발했다. 만약 도움을 거부당하면 그림들을 인사동 골목에 죄다 버리고 올 작정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 회장이 가져간 그림 10점을 모두 사줬다. 게다가 매달 50만원씩 지원금을 받는 전속작가로도 발탁됐다. 작가는 “가나의 전속작가가 되는 바람에 결혼까지 하게 됐으니 가나는 내게 중매쟁이”라고 했다. 26년 전 호당 2만원이었던 사석원의 작품값은 요즘 호당 100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가나는 개관 이래 국내외에서 600여회의 기획전을 개최했다. 또 본격적인 전속작가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작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에 올인할 수 있게 했다. 1996년부터는 파리 시떼(예술공동체)에 한국작가 입주공간을 마련해 운영 중이며, 평창동과 경기도 장흥에 각각 가나아틀리에를 조성해 60여명의 작가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사석원 미스터 빈센트 162.2x260.6cm, Oil on canvas, 2013                                                                    [사진제공=가나아트]

배병우의 안개 낀 ‘소나무’ 사진, 김아타의 독특한 ‘온 에어’ 사진, 컬렉터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전병현, 도성욱의 그림 등이 모두 가나아틀리에에서 탄생했다. 이 회장은 개관 이래 지속적으로 수집했던 민중미술가들의 작품 200여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작가와 인연을 이어온 가나아트는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26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컨템포러리 에이지(CONTEMPORARY AGE)’전을 개막한다. 오는 6월 9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에는 가나와 동고동락해온 50여 작가들의 작품 70여점이 나왔다. 특히 쉽게 접하기 힘든 30년 전 작품도 함께 나와 눈길을 끈다.

전시에는 가나가 3년 이상 후원하고, 개인전을 연 작가들이 초대됐다. 고암 이응노를 비롯해 최종태 윤명로 이종상 이숙자 권순철 김인겸 박대성 이왈종 오수환 이상국 전수천 박항률 배병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오치균 한진섭 등의 작품이 나왔다. 또 김남표 정명조 정해윤 홍지연 백승우 마리킴 지용호 등 젊은 작가들도 참여했다.



지난 2001년부터 막내동생인 이옥경 대표(52)에게 화랑을 물려준 이호재 회장은 “국내 화랑계가 어렵다지만 어려운 때야말로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오니 힘을 내 뛰어야 한다”며 “가나가 세상에 안 알려진 좋은 작품을 대중에게 꾸준히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02-720-1020

yrlee@heraldcorp.com

지용호 조각 Horse Man 2, 150x150x200cm Used tire, synthetic resins, 2011                                   [사진제공=가나아트]
 
이숙자 이브_봄의 환상,130.3x162cm, 순지 5배접,암채,2013                                                                   [사진제공=가나아트]
박대성 작품 앞에서 작가와의 인연을 밝히는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                                                         [사진=이영란 기자]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