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대기업 잡겠다던 ‘경제민주화’…애꿎은 중견 · 中企 잡을라
뉴스종합| 2013-04-23 11:40
내부자거래 무조건 편법으로 간주
개발·판매 분리 흔한 제약업종
수직계열화 필수 전자업종에 폭탄
1·2차 납품 中企는 하도급법 우려

부작용 고려않은 무차별 입법
선의의 피해자 잇단 억울함 호소



대기업과 재벌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경제민주화법이 오히려 ‘중소ㆍ중견기업 잡는 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치 않은 무차별 입법에 예상치 못한 힘없는 선의의 피해자들은 억울함조차 제대로 호소할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말에 국회를 통과, 오는 7월부터 시행 예정인 상속세 및 증여세 개정안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대주주나 친인척이 지분을 가진 관계사와 거래에 대해 증여로 판단, 고율의 증여세를 물리는 이 법은 당초 대기업의 편법 상속을 막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견,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한 회계법인의 분석에 따르면 자산 100억원 이상 3만여개 법인 가운데 이 법에 따라 증여세 폭탄의 대상이 된 중소ㆍ중견기업은 1350여개에 달한다.

기술개발과 판매를 분리 운영하는 것이 보편화된 제약업종이나 계열사 간 수직 계열화가 필수인 첨단 전자업종 등 기업별,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치 않고 내부자거래를 무조건 편법으로 몰아붙인 결과다.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견, 중소기업 중에서는 자신들이 얼마나 세금폭탄을 맞는지 모르는 곳도 많다”면서 “막상 법이 시행되면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문화한 하도급법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이 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이뤄지는 불공정 납품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지만, 막상 떨고 있는 곳은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받은 부품을 조립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1, 2차 납품 중소ㆍ중견기업이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막는 법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며 “대기업이야 해외 업체로 납품선을 돌리면 그만이지만, 대기업 또는 상위 중견기업과 장기 거래가 막힐 영세 중소기업은 오히려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이날 본격적인 국회 논의가 예고된 ‘프랜차이즈법’과 ‘정년 연장법’도 마찬가지 논란을 빚고 있다. 프랜차이즈법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가맹본부의 횡포를 규제하는 내용이 골자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해외 경쟁업체의 진출 러시, 그리고 기존 점포의 권리금 폭리라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기존 상권 보호를 이유로 신규 경쟁자의 진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정년 연장법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나이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봉제가 이미 대기업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반면, 중소ㆍ중견기업에서는 아직 많이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방적인 정년 연장은 이들 기업에는 지나친 임금 부담, 또 종업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해고 압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기업에 지나치게 부담이 가는 경우 등 부작용을 좀 더 분석해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재계와 정치권 일각의 우려를 전했다. 하지만 부작용 예방을 위한 속도와 수위 조절이 쉽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잇따른 과잉입법 우려에 대해 새누리당 일각과 야당에서는 “경제민주화 의지의 후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