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서른살 가나아트의 ‘별난 인연圖’
라이프| 2013-04-23 11:57
고암 전시회위해 佛까지 삼고초려
전속작가 1호 박영남에겐 ‘백지수표’
무명의 사석원 전속발탁 결혼까지…

30년 동안 국내외 600여 기획전
국내 첫 전속제 도입 안정적 삶 보장
아틀리에 조성·해외진출 등 지원

고영훈 등 50여 작가 작품 70여점
26일 개관30돌 ‘컨템포러리 에이지’展



“고교(경복고) 동창의 권유로 1978년 9월, 고려화랑이라는 곳에 첫 취업을 했어요. 그런데 석 달이 지나도록 그림을 단 한 점도 못 팔았죠. 그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첫 비즈니스를 성사시켰어요. 아마도 성탄절까지 뛰어다니니까 사주신 것 같아요. 그리곤 1983년 관훈동의 한 건물 2층에 작은 화랑을 만들었죠. 일반에 소개 안된 작가를 주로 선보였는데 훌륭한 작가들을 만난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화랑 개관 30돌을 맞은 이호재(59) 가나아트 회장은 패기와 열정으로 화랑을 꾸려가며 전속작가제 도입, 작가아틀리에 조성, 해외 진출, 신영역 개척 등 많은 일을 해가며 국내 최대 화랑으로 키웠다. 그는 가장 잊지 못할 작가로 고암 이응노(1904~89)를 꼽았다.

“동양화의 거장 고암을 만나기 위해 1985년 수소문 끝에 화실로 찾아갔죠. 그랬더니 ‘이리 젊은 사람이 화랑주인일 리 없다’며 등을 돌리셨어요.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고요. 당시 고암은 동백림사건 때문에 한국에선 금기시됐던 작가였는데, 저를 중앙정보부 공작원으로 오해하신 겁니다. 세 번째 찾았을 때에야 작품을 보여주셨죠. ‘까딱하다간 이 작품들이 모두 잊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걸 보시곤 ‘그림을 이리 좋아하는 걸 보니 진짜 화랑하는 사람 맞구먼’ 하시면서 모든 걸 맡기셨죠.”

광주민주화 항쟁을 표현한 고암의 ‘인물군상’ 등을 받아들고 귀국한 이 회장은 ‘잊혀진 작가’를 다시 알리기 위해 뛰었다. 이미 민중미술가들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던 그였기에 고암 전시까지 열면 어찌 될지 모를 상황이었다. 다행히 민주화 물결이 도도해졌고, 1989년 신년벽두 호암갤러리에서 고암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개막됐다.

 
가나아트 30주년전에 출품된 이숙자의 신작 ‘이브-봄의 환상’. 싱그런 보리밭과 에로틱한 누드가 결합되며 아름다운 상상을 보여준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개막식 테이프 커팅이 막 이뤄지던 1989년 1월 10일 오후, 선생이 돌아가셨어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다행히 고암이 남긴 작품들은 이후 새 생명을 얻었죠.”

중견화가 박영남(63)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1982년 뉴욕을 찾은 이 회장은 늦깎이 유학생이었던 박영남을 만나 주머니에 있던 달러를 모두 꺼내주었다. “나중에 그림으로 갚으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박영남은 아직도 갚지 않고 있다. ‘정산’의 기회를 놓친 것. 이에 박영남이 “가나화랑은 내게 백지수표”라 하자, 이 회장은 “박영남은 가나의 1호 전속작가”라며 “30년 기념으로 정산을 마무리해야 할 텐데 잘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가 사석원(53) 또한 가나와 인연이 깊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석원은 1t 트럭에 그림을 가득 싣고 무작정 이 회장을 찾아갔다. 파리 유학시절, 가나가 FIAC(아트페어)에 국내 화랑으론 유일하게 참여한 것을 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던 것. 사석원은 “되돌아올 운임도 없이 출발했다. 만약 거부당하면 그림들을 인사동 골목에 죄다 버리고 올 작정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 회장이 10점의 그림을 모두 사줬고, 매달 50만원씩 지원금을 받는 전속작가로 발탁됐다. 작가는 “그 바람에 결혼까지 했다. 가나는 내게 중매쟁이”라고 했다. 26년 전 호당 2만원이었던 작품값은 요즘 호당 100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사석원은 인기 작가가 됐다.
 
사석원의 유화 ‘미스터 빈센트’. 천재 화가 반 고흐에 바치는 헌가다.

가나는 개관 이래 국내외에서 600여회의 기획전을 열었다. 또 본격적인 전속작가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작가들이 작업에 올인하게 했다. 1996년부터 파리 시테(예술공동체)에 한국작가 입주 공간을 마련해 운영 중이며, 평창동과 경기도 장흥에 아틀리에를 조성해 60여명의 작가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배병우의 ‘소나무’와 김아타의 ‘온 에어’ 사진, 전병현 및 도성욱의 회화 등은 가나아틀리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 회장은 개관 이래 수집해온 민중미술 200여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작가와 인연을 이어온 가나아트가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26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컨템포러리 에이지’ 전을 개막한다. 6월 9일까지 계속될 전시에는 가나와 동고동락해온 50여 작가들의 작품 70여점이 선보인다. 

패기와 열정으로 가나아트를 국내 최대 화랑으로키워낸 이호재 회장.      [사진제공=가나아트]

고암 이응노를 비롯해 최종태 윤명로 이종상 이숙자 박대성 이왈종 오수환 임옥상 고영훈 오치균 한진섭 등의 작품이 나왔다. 또 홍지연 백승우 마리킴 지용호 등 젊은 작가들도 참여했다.

2001년 막내동생인 이옥경(52) 대표에게 화랑을 물려준 이 회장은 “국내 화랑계가 어렵다지만 어려운 때야말로 좋은 작품이 나온다”며 “가나가 세상에 안 알려진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02)720-102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