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의원님 법안발의 전에…‘이들’부터 찾는다
뉴스종합| 2013-05-08 11:09

#1. 지난달 22일 김춘순 국회 예산결산특위 수석전문위원의 보고서가 발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17조원의 추경안에 대한 진단 결과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 관련 220개 사업을 하나하나 검토한 보고서는 “71개 세부 사업에서 법적 근거가 미비하거나 사업계획 부실, 연내 집행가능성 저조 같은 추경 편성목적에 부적합한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이들 71개 사업 관련 예산 대부분은 이후 국회의원들의 심사과정에서 대폭 수정되거나 일부는 삭제됐다.


#2. 여야 의원 10여명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자영업자인 대리점주들을 보호한다며 앞다퉈 내놓은 이른바 ‘프랜차이즈법’도 전문위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임익상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은 “공정한 계약을 위해 본사의 영업정보를 고지토록 의무화한 법안 내용은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과 상치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에 속하는 사안은 제외하도록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부당한 계약일 경우 언제든지 가맹점주가 해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이미 비슷한 내용이 약관법에 있음을 지적했다. 결국 프랜차이즈법은 임 전문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핵심 내용이 대폭 수정된 채 정무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입법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회 전문위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에서는 사회 양극화의 해소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대거 다뤄져야 하는 만큼 입법과정에서 전문위원들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는 모습이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일까.

국회 전문위원들은 상임위원회별로 배치돼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보좌한다. 법안이 법리에 맞는지에서부터 법안 내용의 타당성까지 다루는 데다,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전문위원의 검토결과 발표가 제도화되면서 이들의 위상은 헌법기관인 현역 국회의원에 못지않다.

현재 국회 전문위원실은 16개 상임위윈회와 3개의 특위(예산결산특위, 윤리특위, 특위총괄)에 각 1개씩 배치돼 있다. 차관보급인 수석전문위원을 수장으로 1~2급 공무원인 전문위원과 그 아래 입법조사관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수석전문위원 19명, 전문위원 19명 등을 포함해 총 151명이다. 국회 조직도상에서는 장관급인 사무처장에 밑에 편제돼 있지만, 역시 장관급인 상임위원장의 보좌가 주기능인 만큼 상당히 독립성이 강하다.

법리에는 맞는지, 다른 법과 상충되지는 않는지를 검토하는 게 주기능이지만, 최근에는 법안이 법적ㆍ정책적 타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까지 내리기도 한다. 발의된 법안의 법리적 검토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관이지만, 법사위로 넘어가기 전 미리 법리적 문제점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이들 전문위원들의 법안에 대한 평가는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는 ‘참고’사항이다. 하지만 국회법 42조는 전문위원들이 각종 법안이 만들어지는 위원회에서 발언하고, 또 사안에 따라서는 본회의 의결에 앞서 해당 법안에 대한 검토 결과를 설명토록 명문화했다.

1948년 제헌국회 당시 전문위원은 당대 법학계와 법조계의 대가들로 구성됐다. 1976년부터 전문위원을 뽑기 위한 입법고시가 실시됐지만, 2000년까지만 해도 정부 등 외부에서 임명되는 경우가 다수였다. 하지만 2001년부터 독립성을 위해 전문위원은 입법고시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기용했고, 현재 수석전문위원의 경우 단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 출신이다. 입법고시는 행정고시와 거의 유사하게 치러지며, 고시에 합격한 이후 진로도 각 부처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2013년 1월 8일 오전 강창희(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국회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에 진정구 전 기획조정실장을 기용하는 등 차관보급 수석전문위원에 대한 임용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의 역사와 전문의원의 역사가 같다 보니 국회의원과 전문위원의 애증관계도 깊다.

“전문위원이 의정활동의 대부분을 하고 있다”든가, “전문위원이 없으면 입법활동과 예산심의 등 어떤 의정활동도 할 수 없다”는 등의 말도 회자되지만, 반대로 “전문위원의 참견이 심하다”든지, “전문위원은 누가 감시하나” 등의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평소 전문의원들과 빈번히 접촉하는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 또 의원들의 입법 방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문위원들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것을 보면 진정한 ‘프로’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그러다 보니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근 법안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의원실과 전문위원실을 수십번 오가야 했던 한 보좌관은 “빨간펜 선생님”이라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이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주인인데도 예비검토 단계에서부터 전문위원들의 심의가 까다롭다”며 “국회의원들이나 정부에는 이들이 갑”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긍정적 시각이든, 부정적 시각이든 장관에게도 호통 치는 국회의원들조차 차관급도 안 되는 전문위원들에게는 깍듯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 다선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들도 이들 전문위원을 대할 때는 깍듯하게 존대하고, 또 웬만한 서류는 보좌관이 아닌 본인이 직접 들고가 설명한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막강한 전문위원들이지만, 입법과정에서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극도로 꺼린다. 언론과의 접촉도 철저히 피하고 있다. 객관성과 중립성이 생명인데, 자칫 전문위원이 지나차게 부각될 경우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국회 사무처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철옹성’이란 부정적 평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최정호ㆍ홍석희ㆍ김윤희 기자/choijh@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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