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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가해자 부장이 성교육 강사로…솜방망이 징계 ‘2차 피해’ 부른다
뉴스종합| 2013-05-24 11:06
직장내 매년1회 성희롱 예방교육
정작 받아야 할 사장·간부 열외
동영상 강의 등 대부분 형식적
징계 규정없어 가이드라인 시급




# A 회사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 참석률이 100%를 기록했다. 성희롱 예방 지침을 만들고, 성희롱 방지조치 자체점검 관리도 실시했다. 성희롱 전담창구와 고충심의위원회도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 회사 B 대리는 채용과정 중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성적인 표현이 담긴 문자를 보내고, 심지어 채용을 대가로 키스를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다. 강원랜드의 사례다.


대부분의 기관과 기업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것은 1999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장소 1위는 직장 내에서고, 성희롱을 당했다는 신고 건수는 오히려 증가세에 있다. 전문가들은 성희롱 예방을 조직문화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제도적으로는 징계를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장님’부터 예방교육=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매년 1회, 최소 1시간 이상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교육을 마친 담당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작 받아야 할 사람들은 교육을 안 받고, 안 받아도 될 직원들만 와서 앉아 있다고. 원칙은 사장을 포함해 전 직원이 교육에 참석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중간 관리급 이상이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 회의며 출장이며 이런저런 핑계로 빠진다. 무엇보다 본인이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현실은 다르다. 직장 내 성희롱 자체가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가해자는 대부분 중간 관리급 이상이다.

인권위의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에 따르면 대표자가 평직원을 성희롱한 경우가 24.3%며, 대표자 이하 중간관리자 이상이 평직원을 성희롱한 경우가 32.2%로 중간 관리급 이상에서 문제가 된 것이 56.5%에 달한다.

피해자 위치에 있는 평직원들만 교육을 받았으니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현혜 교수는 “성희롱 예방교육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기관장 등이 참석할 때는 교육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성희롱 문제에 대해 조직이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기관과 기업에서 1999년부터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직장 내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고, 성희롱을 당했다는
신고 건수는 오히려 증가세에 있다. [사진제공=서울시]

성희롱 예방을 조직문화 차원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이라고만 여긴다면 같은 일은 몇 번이고 반복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그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지 여부를 보여주는 척도”라며 “근본적으로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절차보다 기관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희롱한 부장이 예방교육 담당자?=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사정은 그래도 괜찮다. 중소기업의 경우 형식적인 성희롱 예방교육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점검이 나오더라도 실시 여부만 따질 뿐 교육을 누가 진행했는지, 어떤 내용으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다고 해 놓고는 관련 동영상을 5분여간 보여주고 끝낸 곳도 있다. 이 회사는 성희롱 예방교육으로 ‘생방송 화제집중’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직장 내 성희롱 이제 그만’이라는 주제의 내용을 포함해 5분 가량을 시청하라고 했다. 결국 이 회사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했다.

다른 한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교육을 한다고 해서 교육진행자가 누구인지 봤더니, 성희롱 가해자로 신고가 들어온 부서장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이영희 고용평등상담실장(노무사)은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동영상 강의로 대체하는 곳도 늘어났고, 실제 강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강사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희롱 징계 가이드라인 마련해야=성희롱 피해자들의 50%는 사건 이후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렇게 큰 데 비해 징계는 미미하다.

징계는 성희롱 재발을 막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현재 징계처분은 기관마다 제각각이고 수위도 합당하지 않다. 현재 성희롱 관련 징계는 ‘어떤 식으로든’ 내려지기만 하면 된다. 단순 견책이라도 상관없다. 견책은 가해자에게 현실적인 불이익도 없을 뿐더러, 3년이 지나면 기록에서도 사라진다.

지방고용노동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피해구제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지방고용청은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에 대해 사업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실제 가해자를 징계할지 여부는 사업주의 자율에 맡겨진다.

인권위의 결정도 강제성은 없다. 특히 영세사업장의 경우 징계권자인 사장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구제절차로 사장을 처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성희롱 사건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이고, 큰 틀에서 징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야노무법인 김선미 노무사는 “현재는 직접적인 징계 규정이 없고, 회사 측에서 자율로 징계를 결정한다고 해도 피해자의 고통에 비하면 징계 수준이 너무 낮다”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함께 기업 측도 연대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징계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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