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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간 외국인, 국채 6조7000억 매도한 이유는
뉴스종합| 2013-06-04 10:12
2013년 5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첫 회의의 주제는 ‘한국경제에 대한 인식과 향후 정책 과제’다. 보고서 작성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 삼성경제연구소· 골드만삭스 · 맥킨지 등 네 곳이다.

이날 외국인들은 장초반부터 국채선물(3년)을 내다팔기 시작해, 하루동안 사상최대인 4조4993억원을 순매도한다. 선물가격이 폭락하자 가장 거래가 많은 국고채 3년 금리는 0.11%포인트나 급등했다.

2개 외국계 금융회사가 참여해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채권거래세 도입’ 정책제안이 포함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채권투자 수익의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내야한다. 투자자들에게는 분명한 악재다.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하(채권 가격상승)를 예상하던 국내 기관들은 청와대 회의 내용을 알턱이 없었다. 국내 기관들에 회의 내용이 알려진 것은 엠바고(보도제한)가 풀린 오전 10시 이후였다.

시장의 한 채권매니저는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양적완화 종료시사 발언 탓에 전일 미국 국채시장이 급락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런데 채권거래세 도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재료였는데, 외국인들이 어떻게 장 초반부터 그렇게 공격적으로 매도에 나섰는 지 알 수 없다”며 탄식했다.

이날부터 3일간 외국인의 국채선물 순매도 규모는 6조7636억원에 달하고, 금리(국고채3년 기준)는 0.17%포인트나 올랐다.

초기에 시장 주도권을 외국인에 내준 결과는 참담했다. 국내 금융기관은 사흘새 보유 채권가치가 20조원이나 증발했다.

이 뿐 아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치권까지 나서 이끌어낸 한국은행의 0.25% 금리인하 효과가 상당부분 상쇄됐고,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위해 발행해야 할 17조원의 국채 이자부담도 그만큼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채가 10년물로 발행된다면 이번 ‘5.29쇼크’로 국가의 이자부담은 연 2000억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청와대 경제관련 회의 참석은 꽤 오랜 관행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골드만삭스, JP모건 등은 단골 초대손님이었다. 외국인 투자자의 조언을 듣는다는 명분이다. 이 자리에서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대한민국 최고급 정보를 가진 최고위 인사들과 깊이 교류한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 임원은 “정부 관련회의에서 인연을 맺은 관료들이 정책을 발표하기 전,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정부 정책방향이 미리 외국계 금융회사들에게 새어나가는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는 외부에서 확인이 어렵다. 하지만 해외본사나 지사와 취득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채널을 동원해 국내시장과 거래하는 정황은 추정이 가능하다. 2011년 도이치증권이 일으킨 옵션쇼크는 좋은 예다. 국내 지점이나 법인을 뒤져봐야 선행매매의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골드만삭스 한국법인의 주고객은 외국인이다. 골드만삭스 본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주가조작 혐의를 받았다. 맥킨지의 최대 고객 역시 미국의 대형투자은행이다. 금융정책 수장인 금융위원장도 빠진 청와대 회의 정보를 ‘수익추구’와 ‘고객이익’이 최우선 가치인 미국의 민간기업이 주물렀다.

사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외국계 금융회사 창구가 주로 이용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의 거래주문을 미리 아는 것은, 환율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외환시장이 외국인 판이 된 지는 오래다.

이젠 채권시장마져 외국인이 주무르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4월말 현재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보유금액은 97조4000억원이며, 보유비율로는 7.24%에 달한다.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금리가 출렁이면서, 한국은행의 ‘금융정책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그래도 외국계 금융회사 관계자의 청와대 출입은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은행권의 익명의 관계자는 “고위관료나 한국은행 간부 자제가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개인 능력 덕분일 수 있지만, 과연 그럴까하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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