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날씨’ 암초 만난 한국경제
뉴스종합| 2013-06-07 06:40

[헤럴드경제=조동석 기자]사계절에서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 바뀐 한반도. 이런 기후변화는 전력수요 곡선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만들었다. 원전 가동 정지에다 봄과 초여름을 건너뛰고 성큼 다가온 한여름 무더위로 우리는 날마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늘만 쳐다보는 ‘하루살이’ 꼴이 됐다.

날씨를 제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환경 파괴로 점점 더 뜨거워지게, 추워지게 만들 뿐이다. 이런 가운데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는 ‘날씨’라는 암초 앞에서 더욱 휘청거리고 있다.

▶날마다 살얼음판= 7일 정비를 끝내고 재가동이 예정돼 있던 울진 5호기(설비용량 100만㎾) 가동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의 테스트로 며칠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전력당국은 이를 감안해 8일부터 계획예방정비로 가동 중단할 예정이던 월성 3호기(설비용량 70만㎾)의 정비 일정을 1주 늦췄다. 당장 급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계 최대 피크 기간(8월 둘째 주) 우리 전력 사정은 공급능력 7708만㎾에 최대 수요 7727만㎾로 19만㎾가 모자란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전방위적인 수요관리 대책을 실시하면서 예비전력은 279만㎾가 유지됐다. 이는 전력 경보 ‘주의’ 단계다. 200만㎾ 미만일 땐 ‘경계’, 100만㎾ 아래면 ‘심각’으로 발령된다.

전력량을 체크하는 전력거래소의 전체모습.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어케이블이 설치된 것으로 드러난 원전 2기가 동시에 발전을 정지한 데다 최대 수요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이미 무더운 여름을 예고했고, 에어컨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산업부는 예비전력이 -200만㎾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공급 능력을 대폭 보완할 수단이 없다”고 했다. ‘절전’ 외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날씨에 민감해진 한국경제=최근 경제는 날씨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무더위와 강추위, 폭우와 폭설 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건설현장에선 안전사고나 공정지연 가능성이, 운송업계에선 교통혼잡 비용이 각각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가전ㆍ의류ㆍ식품업계의 경우 생산과 판매, 재고관리 등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기상예측에 실패하면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야외활동을 자제하게 되면서 소비위축은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블랙아웃 대비책으로 전력 수요를 줄여 위기를 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수요 감축 목표량의 90% 정도가 산업계 몫이다.

쉴 새 없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날씨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추경 등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과 기준금리 인하가 날씨라는 악재 앞에서 별 효과를 못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경기회복기로 접어들면 산업계의 전력수요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무더위로 정부의 전력수요 억제책이 유지된다면, 날씨가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회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내 레저산업 활성화와 붐비는 스키장, 각광받는 날씨보험이나 날씨파생상품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대응에는 비용이 들어가지만 온실가스 감축 산업이나 온실가스 처리 산업 등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부(國富) 좌우할 기후변화 대응=기후변화는 환경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각국의 경제문제와 맞물리면서 국제사회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기후변화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환경 규제가 생겼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특히 선진국의 강도 높은 규제는 우리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끼게 했다.

환경규제는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 전기ㆍ전자제품 폐기물처리지침(WEEE), 에너지 사용제품의 친환경 설계지침(EuP), 신화학물질관리정책(REACH), 폐자동차처리지침(ELV) 등이 있다.
각 발전소의 전력량을 점검하는 직원의 모습.

이런 환경규제는 이미 환경문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선진국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이 있어, 비관세무역장벽 역할을 한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EU의 규제와 비슷한 규제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와 산업계도 제품 수출과 국내 환경보호를 위해 환경규제를 선진국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설명이다.

기업 입장에서 기후변화는 경영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봄, 가을이 실종되면서 바뀐 소비 패턴에 대응해야 하는가 하면 온실가스 규제에 따른 감축시설 도입이나 기술개발 등은 기업의 생산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8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경제는 이제 날씨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과제도 떠안았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