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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남과 나눈다”…잡셰어링, 당신은 할 준비가 됐습니까
뉴스종합| 2013-06-05 12:13
연공서열식 급여체계 익숙한 일본
단기·파견근무 확대 정책 완전실패
한국도 경직된 고용문화 ‘걸림돌’

1992년 통독이후 극심한 경기침체
폴크스바겐 잡셰어링으로 위기 극복

朴정부 시간제 공무원 확대 추진 불구
‘고용률 70%’ 위해선 민간기업 참여 필수



새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일자리 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파트타임) 공무원’을 대폭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지만, 여론의 평가는 냉랭하다. ‘공공 부문부터 일자리를 나누겠다(잡셰어링)’는 의지는 높이 사지만, 현실성과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공통된 해법은 ‘민간 부문의 참여’다. 일반기업에서 잡셰어링을 하지 않는 이상 국민 세금만 축내고 놀고 먹는 공무원만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 사례로 소개한 폴크스바겐의 일자리 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파트타임 확대는 산업경쟁력 약화=새 정부의 ‘시간제 근로 확대’는 네덜란드의 잡셰어링 정책에서 따왔다.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노동계는 임금인상 요구 자제와 일자리 나누기 동참을,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과 투자ㆍ고용 확대를 약속했다. 정부는 공무원 임금과 사회보장 수당을 삭감하고, 세금을 줄여 근로자의 소득을 보전해줬다. 그 결과 고용률 70.8%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뤘다.

문제는 파트타임 근무 형태의 일자리만 늘리다 보니 고용의 질은 떨어지고, 풀타임 근무자는 줄어 취업률 증가가 소득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는 맹점을 낳았다. 또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장기적으로 국가산업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와 같은 산업ㆍ고용 환경에는 더욱 적용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가 항상 사회 이슈로 있는 데다 기술ㆍ혁신형 산업을 장려하는 창조경제에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산업ㆍ업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 일자리 나누기는 기술집약적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고용문화는 넘어야할 벽=우리나라의 경직된 고용문화도 일자리 나누기의 걸림돌이 된다.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노ㆍ사ㆍ정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대변되는 장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2년 단시간 근무와 파견 근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잡셰어링을 도입했다. 정부는 특히 일자리 나누기가 사회 전반에 정착될 수 있도록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폈다.

결과는 참패했다. 문제는 경직된 고용문화였다. 유럽과 달리 연공서열식 급여체계에 익숙해진 일본 근로자들은 아직 일자리를 나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또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와 낮은 임금 탓에 구직자의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잡셰어링’을 도입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는 일본과 비슷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큰 교훈이 된다. 비슷한 예로 이명박정부의 유연근무제를 들 수 있다. 정부는 2010년 295개 공공기관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출ㆍ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재택근무를 보장해 줬지만, 전체 30여만명의 직원 중 참여율은 8.1%에 불과했다. 고용 불안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탓에 ‘내 일을 남이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고용 경직성을 해소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유휴 인력의 지속적인 교육으로 노동생산성을 제고하는 등 잡셰어링 정책의 정교함도 요구된다.

 
박근혜정부의 시간제 근로 확대는‘ 공공 부문부터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부문의 참여’ 없이는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잡셰어링 성공은 민간 참여가 관건=새 정부는 연내 수요조사를 한 뒤 정규직 공무원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시간제 공무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물론 고용 형태는 정규직을 유지한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공무원(2012년 정원 기준)은 모두 99만423명이다. 이 중 진정한 ‘희망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정부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38만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필연적으로 민간 부문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연구원은 2020년까지 근로시간을 연간 400시간 이상 줄이고 이를 절반만 일자리로 전환할 경우 최대 169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전망했다.

한 전문가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노사 간 충분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 잡셰어링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추진되는 획일적인 일자리 나누기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고용정책 방향이 바로 서야 한다. 단순히 숫자 놀음만 반복한다면 선진국의 실패를 답습하게 된다. 보조금 지급과 세금 감면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고용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고용안전판’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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