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뮤지컬 ‘잭더리퍼’서 형사와 기자로 찰떡호흡…동서 사이 민영기, 강성진
라이프| 2013-06-20 07:35
“민영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배우죠.”(강성진)

“뮤지컬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장르인데, 같은 방면 연기로는 ‘제부’가 한참 선배시죠.”(민영기)

뮤지컬 배우 민영기(40)와 영화ㆍ드라마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 온 배우 강성진(42)은 동서지간이자 유명한 연예인 가족이다. 민영기의 부인인 배우 이현경이 강성진의 부인인 가수 출신 이현영의 언니다. 나이 어린 민영기가 손윗 동서인 셈. 둘은 지난달 말 경기도 성남 성남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뮤지컬 ‘잭더리퍼’에서 나란히 무대에 서고 있다. 민영기는 2009년 초연부터 벌써 5년째 형사 ‘앤더슨’ 역을 맡고 있다. 강성진은 기자 ‘먼로’역으로 사실상 뮤지컬에선 첫 데뷔했다.

‘잭더리퍼’는 19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뮤지컬화한 것이다. 1888년 8월부터 11월까지 영국 런던 그리니치에 있는 화이트채플가에서 매춘부 5명이 엽기적으로 살해돼 영국 전체가 공포에 도가니에 빠졌지만 결국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미해결로 남은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체코에서 뮤지컬로 초연됐고, 한국에선 2009년 ‘살인마 잭’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체코 원작이지만, 사실상 창작에 가깝게 개작됐다. 임상실험을 위해 시체를 사는 젊은 외과의 ‘다니엘’과 특종을 위해 돈 거래를 하는 기자 ‘먼로’ 등 두 인물은 한국에서만 등장한다.

‘앤더슨’과 ‘먼로’는 ‘잭’을 잡기 위해 돈 거래를 하는 관계로 설정됐다. 당연히 함께 등장하는 장면도 많다. ‘먼로’ 역에 강성진을 추천한 것은 다름 아닌 민영기다. 민영기는 “제부가 내가 하는 뮤지컬을 거의 다 봤다. 아내와도 제부가 ‘먼로’역에 진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마침 ‘먼로’를 새로 캐스팅한다기에 오디션을 보겠다고 물었다”고 떠올렸다.
 
“아이돌이나 대중스타가 출연하면 뮤지컬 관객층이 넓어질 수 있어 긍정적이죠.” 민영기(왼쪽)와 강성진은 뮤지컬 전문 배우와 대중스타가 만나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제공 =샘컴퍼니]

강성진은 “20년만에 오디션을 봤다. 감회도 새로웠지만 많이 떨렸다. 대학(호서대)에서 오디션 필살기 강의를 하고 있는데, 선생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학생들에게 볼 면목이 없지 않냐”며 웃어 넘겼다.

공연 4주차에 접어들어 이제 편할 때도 됐지만 새내기 뮤지컬 배우는 여전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는 내 장면이 끝나면 쉬는데, 뮤지컬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1막에서 ‘먼로’ 재등장까지 40분간 휴식인데, 대기실을 못내려가고 계단에 있다. 무대를 통해서 5를 충전하면, 6은 방전하는 것 같다. 성남공연 끝나면 보약 한 재 지어먹어야겠다”고 너스레를 부렸다. 민영기는 “극 중 ‘먼로’의 멱살을 잡고 때려눕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연기하는 게 좀 민망하다. 안 쳐다보려한다. 이래서 가족끼린 힘들다”고 짐짓 힘든 척 했다.

민영기가 부르는 ‘회색도시’는 이 뮤지컬의 백미다. 원작에는 없던 한국 창작 장면이다. 늘 코카인에 쩔어 있고 시니컬한 성격의 ‘앤더슨’이 무자비한 살인이 벌어지는 런던에 대한 염증에 “이 도시가 싫어”라고 외치는 노래. 앤더슨이 독창할 때 뮤직비디오 속 정지화면 처럼 거리에 지나는 시민들이 일순간 멈춤이 되는 장면은 전체 극 중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꼽힌다. 강성진은 “박수 갈채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라고 치켜세웠다. 민영기 역시 “이번에 체코에서 잭더리퍼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회색도시’ 영상을 쓸 수 없겠냐고 문의가 와서 보내줬다. 체코 측에서 역수출해도 되겠다고 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일본서 흥행에 대성공한 이 뮤지컬은 ‘원조 한류뮤지컬’이란 수식을 받는다. 공연 시작 두시간전서부터 공연장 밖에서 외국인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배회하는 광경이 쉽게 목격된다. 민영기는 “성진(슈퍼주니어 멤버)이 공연할 때는 외국인이 정말 많이 온다. 싱가폴, 중국, 일본, 심지어 영국, 미국에서도 오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리액션이 잘 없다. 한국에선 애드립(즉흥대사)에 웃음이 빵 터지는데, 일본에선 애드립을 하지 않기도 한다”고 해외 관객의 반응을 소개했다.


민영기는 ‘모차르트’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 대극장 뮤지컬에서 성악과 전공 답게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도 2000년대 초반엔 출연료를 거의 받지 못했다. 뮤지컬 배우는 열악한 처우 때문. 강성진은 “이 뮤지컬을 위해서 사극 출연을 거절했다. 금전적인 이유를 생각하면 드라마를 해야하지만, 무대가 주는 에너지가 분명 있다”고 말했다.

민영기는 “무대에 서는 사람은 다 그렇지만, 마지막 박수 받을 때 희열을 느낀다”면서 “이 작품이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하고 싶다. 10년은 더 해야할 것 같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강성진 역시 “뮤지컬에서 외면당하지 않는 게 계획이자 목표다. 내년에도 무대에 설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잭더리퍼’는 다음달 16일부터 9월29일까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