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평가받는 왕수쩡의 ‘한국전쟁’(글항아리)은 통용되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열린 시각에서 전쟁을 조망하려 애쓴다. 한국전쟁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권 다툼으로 본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전쟁에 참가한 당사자들의 상황과 전략, 전술을 객관적으로 서술해냄으로써 그동안 이념에 의해 바라보지 못했던 거리를 일정 부분 확보해냈다.
왕수쩡의 서술은 전쟁에 참여한 지휘자와 사병들의 행적과 심리 중심으로 전개된다. 참전자들의 판단과 입장이 전쟁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틀어지는지, 또 풀꽃처럼 얼마나 쉽게 꺾이는지 저자는 죽죽 그려나간다.
1950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주년을 기념하는 국경일. 중국인들은 6월 25일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은 달랐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이 38선에 근접하면서 한국전쟁은 더 이상 내전이 아니었다. 저우언라이는 미군이 38선을 넘어 확전을 기도한다면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미국은 이를 중국의 외교적 제스처라고 치부했다. 10월 8일 ‘중국인민지원군’이 탄생, 출병은 시작된다.
많은 군사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중국의 참전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왕수쩡은 당시 중국과 미국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본다. “중국 외교정책상 공산당의 강렬한 이데올로기적 요소와 위대한 이상적 목표에 대한 당원들의 신념은 근 한 세기 동안의 굴욕과 좌절을 경험한 이 동방 민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념이 불러온 이 시련이 민족의 존엄이라는 지고무상의 위치에 놓여 있음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얘기와 서로 다른 시각차를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별미다.
1950년 10월 19일부터 25일까지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에 개입하는 초기 며칠간의 급박한 상황은 드라마틱하다.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10월 21일 오전 9시 피신 중이던 김일성을 찾아가 중국 정부가 출병을 결정했다고 전한다. 부대가 이미 압록강을 도하했고 중국인민지원군의 선부 참전부대 6개군 35만명이 곧 도착할 것이며 마오쩌둥이 그 밖에도 6개군을 예비대로 준비해 두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김일성은 감격해한다. 그러나 전략 차원에 둘은 당시 인지하지 못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음을 저자는 복선으로 보여준다. 회의가 끝난 뒤 외딴 두메산골에서 김일성이 닭 한 마리와 포도주 한 병으로 펑더화이를 대접해 감격해하는 장면도 있다.
우리가 흔히 중국의 북한 지원군을 ‘인해전술’이라 표현하는 데 대해 저자는 “이른바 ‘인해전술’은 한국군이 놀라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착각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북ㆍ중 국경지대에서 맞닥뜨린 전투는 한국군 제6사단 7연대와 중국 353연대 간의 싸움이었으며, 게다가 중국군은 포병의 지원도 공중 지원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초기 중국군이 대승한 온정지구에서는 엄청난 양의 노획물을 획득했는데 그중에는 영화필름으로 가득찬 차량 한 대가 있었다는 대목도 새롭다. 차량 옆에 누워 있는 시신의 완장에는 ‘정치활동 대한민국 태양영화사 제조부 부장 한창기 9월 30일 발급’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각국의 전술 전략 비교도 흥미롭다. 상대편 군사의 후방 요충지에 기동작전을 펼치는 맥아더의 ‘개구리 뜀뛰기 전법’, 소위 ‘치고 빠지기’를 시종일관 전개하면서 적군의 혼을 빼놓은 펑더화이 유인전술, 중국군에 휴식과 재편성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한 연속공격 작전을 구사한 리지웨이의 ‘선더볼트 작전’ ‘킬러 작전’ 등 다양한 전술과 작전이 소개된다.
객관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중국군을 미화하는 장면, 가령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를 수수하고 솔선수범하는 인물로 맥아더와 대비되게 묘사하는 식이 곳곳에 드러나는 건 이 책의 한계다.
저자는 1951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 서명 당시 분위기도 생생하게 전한다. 서명 뒤 12시간이 지나야 정식 발효되기 때문에 여전히 천지를 뒤흔드는 총포소리가 요란했으며, 마침내 오후 10시가 되자 기괴한 정적이 흘렀다고 썼다.
저자의 한국전쟁의 결론은 이렇다.“이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심지어 쌍방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전쟁은 자체의 규율이 있고, 우연과 필연이 한데 섞여 흐름이 결정되기도 하며, 삶의 희열과 죽음의 함정을 안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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