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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병원·의사 의료계 ‘슈퍼 갑’
라이프| 2013-06-21 11:07
반품 들어와도 울며 겨자먹기
일부 제약사 영업사원은 사채까지



어떤 분야에서나 ‘갑을관계’는 존재하지만, 제약회사에 있어 병원과 의사, 약사는 회사의 매출과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할 정도로 군림하는 ‘갑 중의 갑’이다.

전문 의약품의 경우 한 질환에 쓰이는 수많은 의약품 중에서 어떤 약을 쓰는가는 전적으로 의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약회사에 병원과 의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그로 인한 리베이트는 오랜 관행이자 그들의 표현대로 ‘필요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일반 의약품의 경우도 이번에 남양유업 사태를 부른 이른바 ‘밀어 넣기’ 관행이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 지는 오래된 얘기다. 남양유업 사태와 다른 점은 ‘갑’이 제약회사가 아니라 약국이라는 점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매출목표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반품된 제품대금을 자비로 충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한 경우다. 최근에는 한 중견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사채를 끌어다 밀어 넣기를 하다 목숨을 끊은 일까지 생겨날 정도다.

제약업계와 병원, 의사 간의 리베이트 규모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5년 동안의 제약사 리베이트 규모는 검ㆍ경 등이 적발한 것만 1조1400여억원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제약회사와 병원과 ‘관계를 트는’ 이른바 ‘랜딩비(약품 채택 대가로 병원에 최초로 지급하는 돈)’는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략 의약품 납품가격의 20%에 달한다. 관계를 맺고 난 후에는 다양한 방법의 ‘상납’이 이뤄진다. 랜딩비나 병원 건물 신축 비용의 일부를 대는 것은 리베이트를 주는 쪽과 받는 쪽을 다 같이 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되기 전에 횡행했던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최근에는 ‘쌍벌제’를 피해가기 위한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의사들의 각종 학회ㆍ세미나에 대한 지원은 기본이다. 물론 ‘쌍벌제’를 피해가는 방법들이 동원된다. 일부 제약사는 영업사원 명의의 신용카드를 의사에게 대여해주거나 고액의 상품권 제공, 골프 접대도 모자라 ‘카드깡’까지 해가며 현금을 만들어 리베이트로 제공한다. 심지어는 거래 병원 의사들의 몇분짜리 인터넷 강의를 영업사원이 듣고 강의료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주는 등 신종 수법들이 동원되는 실정이다.

특히, 복제약(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신약과 약효와 성분이 같은 카피약)에 대한 국내 제약사들의 높은 의존도는 리베이트를 부추긴다. 수십개의 제약사가 품질이 똑같은 복제약을 생산하다 보니 결국 의사에게 누가 더 좋은 서비스(리베이트)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영업전쟁의 승패가 가려진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오리지널 대비 복제약의 보험약가는 80% 수준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아 마진 폭이 커서 매출액의 20%를 리베이트로 제공해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은 고스란히 약값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내 제약산업의 취약성으로도 연결돼 또다시 리베이트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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