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위크엔드] 돌길 · 흙길 · 성곽따라 3시간…몰랐던 서울의 파노라마에 말을 잊고…
뉴스종합| 2013-06-28 10:57
제주도에 올레길,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다면 서울에는 ‘서울 둘레길’이 있다. 서울 둘레길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한양도성길을 따라 작게 도는 내사산길과 수락산,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 외곽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도는 외사산길로 나뉘어 있다. 외사산 길은 2014년 말 조성을 완료한다는 목표에 따라 현재 조성 중이다.

기자는 내사산 길 중 ‘북악산 코스’를 택했다. 창의문에서 숙정문을 거쳐 혜화문까지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이다. ‘총 4.92㎞, 소요시간 2시간15분, 난이도 중급’으로 해볼 만했다. 조건도 적당했지만 백악마루, 청운대, 곡장, 촛대바위, 말바위쉼터, 와룡공원 등 볼거리가 많고 서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가 많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지난 22일 토요일 오전 11시. 간단한 등산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창의문휴게소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휴게소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북악산 코스 중 ‘창의문~숙정문~말바위안내소’는 군사경계지역이라 신분증이 필요했다. 없으면 못 들어간다. 입장시간도 하절기 오후 4시, 동절기 오후 3시까지로 제한된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휴게소를 나와 숙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몸 왼쪽으로 성곽이 늘어서 있으니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엔 성곽 틈으로 서울 전경이 보이고 오른쪽으론 울창한 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으니 말 그대로 걸을 맛이 났다. 콧노래도 나왔다. 

서울 둘레길을 작게 도는 내사산길 중‘ 북악산 코스’는 총 4.92km로 2~3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중급 정도에 해당한다. 백악마루, 청운대, 촛대바위 등 볼거리와 서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가 많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5분여를 걷자 눈앞에 끝없는 계단이 나타났다. 경사도 족히 70도는 되는 듯. 높이가 25㎝는 돼 보이는 계단을 10여개 올라오니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숨은 거칠어졌다. 반대 코스에서 시작해 하산하는 등산객들은 “이 길로 올라왔으면 죽을 뻔했다”며 껄껄댔다. 웃음소리가 얄미웠다.

한 600m쯤 올라갔을까. 정자 쉼터가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돼가고 있었다. 걷기 시작한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10여분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힘을 내 시작했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북한산 백운대는 물론 관악산 죽음의 코스로 불리는 ‘깔딱고개’를 오르는 고통과 맞먹었다. 쉽게 걷는 둘레길이 아니었다. 숨이 차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았지만 그때마다 뒤를 돌아 서울 전경을 감상하며 숨을 고르고 다시 위로 위로 향했다. 이젠 성곽이 든든한 보호벽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여를 더 올라왔을까. 북악산 스카이웨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악산 정상이었다. 눈앞에 ‘백악산 해발 342m’라고 쓴 표지석이 보였다. 백악산이 북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고작 342m인데 이렇게 올라오는 길이 힘들다니…’ 북악산이 괜히 서울의 주산(主山)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내려가니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교전이 벌어지면서 총탄을 맞은 1ㆍ21 사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40여년이 훌쩍 넘은 일이었지만 200년이 넘은 고목은 아직도 상처 자국을 간직하고 있었다. 좀 더 걸어가니 청운대가 나왔다. 해발 293m인 청운대는 북악산 서울성곽 내에서 가장 조망권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남으로는 경복궁과 세종로, 북으로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성곽의 외곽 부분도 잘 보이는 곳이다. 촛대바위도 한눈에 들어왔다. 


숙정문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었다. 인위적인 나무테크 계단이 아닌 돌길과 흙길이었다. 적당히 굽이진 오솔길이 걷는 맛을 느끼게 했다. 가만가만 불어오는 바람에선 깊은 숲 냄새가 났다. 올라오는 길에서 둘레길의 위엄을 느꼈다면 숙정문까지 가는 길은 둘레길의 고고함과 정취가 물씬 풍겼다. ‘곡장(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을 지나 북대문인 숙정문에서 도착하니 멀리 삼청각이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어느새 비 오듯 흐르던 땀도 모두 말라버렸다.

숙정문을 뒤로하고 경사 낮은 돌계단을 걷다 보면 탁 트인 장소가 나온다. ‘말바위전망대’다. 성북동 부촌과 경복궁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몇 걸음 더 가며 말바위안내소가 나온다. 군사경계지역이 끝나는 지점이다.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마지막 코스 혜화문으로 향했다. 군사경계지역을 벗어나서인지 혜화문 가는 길은 편안한 등산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푹신한 흙길을 밝으며 한발 한발 내딛자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조망 명소’인 불암산, 한성대 서경대, 낙산근린공원, 개운산근린공원 등이 보였다.

혜화문에 오르니 정면으로 낙산으로 이어진 성곽길이 보였다. 해가 지면 서울의 야경을 품을 수 있는 명소란다. 야경은 아니었지만 낙산으로 이어진 풍경은 노을 없이도 매우 아름다웠다. 창의문에서 혜화문까지는 총 3시간30분이 소요됐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한 셈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뭔가 머리는 채운 느낌이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책을 읽는 듯 북악산 둘레길은 흥미롭고 쫓고 싶은 길임이 분명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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