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백자 달항아리가 수트를 걸쳤다고? 이수종의 ‘청담에 뜬 달’
라이프| 2013-07-09 13:58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전시 타이틀 한번 희한하다. ‘이수종-청담(淸淡)에 뜬 달’이다. 부제는 한술 더 뜬다. ‘슈트를 걸친 달항아리’란다.
도대체 무슨 소리람? ‘이수종의 도예전’쯤은 짐작이 가는데 ‘청담에 달이 떴다’니? 그것도 달이 정장을 차려 입었다니…. 청담동 어느 갤러리에서 열리는 도예전인가?

오호라! 알고 보니 한국 도예계의 중추 이수종(65)이 경기도 용인 기흥의 복합문화공간 지앤아트스페이스(관장 지종진)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갖는 개인전의 제목이다. 뽀얀 달처럼 둥글고, 넉넉한 백자를 선보이는 전시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슈트’는 또 무얼까?

청담은 ‘맑고 엷은 빛깔’과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이수종이 이번에 빚은 백자 달항아리는 바로 그 맑은 빛깔과 순정한 세계가 ‘청담’과 맞닿아 있다. 또 ‘슈트를 걸쳤다’ 함은 달항아리의 상하 이음새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마치 깔끔한 슈트 한 벌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신사 같다 해서 붙인 부제다. 달항아리의 경우 으레 이음새를 없애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으나 이수종은 이번에 그 이음새를 그대로 두는 파격을 시도했다. 자연의 결과물인 그 ‘무위의 선(線)’이 좋았기 때문이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작업을 하는 틈틈이 모교를 비롯해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작가는 지난 1999년 서울대 강사를 끝으로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직 흙을 만지고 주무르고 물레를 차는 데 투신한 것.
추사의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경기도 화성의 외진 작업실에서, 이수종은 칩거하다시피 들어앉아 미술재료 중 자연과 가장 가까운 흙을 끝없이 치대고 매만진다.

이번 개인전에 그는 백자 달항아리 신작을 여러 점 내보였지만 원래는 분청사기로 유명한 작가다.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그의 분청사기는 더 유명해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중국 베이징의 중국미술관 등에 그의 분청사기가 소장돼 있다.
그의 분청사기는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대충 만든 듯하다. 유약이 얼기설기 묻어 미완성작처럼 허술하게 보인다. 게다가 큰 붓으로 쓰윽쓰윽 더한 드로잉은 어떠한가. 그러나 그 어눌하고 거침 없는 표현이 바로 ‘이수종 분청’의 매력이다. 지극히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이어서 현대적 감각이 물씬 난다. 그만의 무덤덤하면서도 초월적인 미감이 분출할 듯 흘러넘쳐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것.

이번에 그는 백자 작업에 도전했다. 파르르한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 유백색의 백자 달항아리는 완만한 보름달처럼 형태가 튼실한 것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각도가 가파르게 처리돼 날이 잔뜩 선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또 중간 이음새를 그대로 둔 파격의 달항아리도 함께 출품됐다. 

이수종의 백자 달항아리는 ‘자연(흙과 불), 그리고 작가의 땀방울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고 광고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무념무상의 상태를 보여준다. 지고지순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담담하고 단순하다. 흙과의 깊고 깊은 내밀한 대화를 거쳐 탄생한, 맑고 차진 백자인 것이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흙과 함께하다 보니 자연의 물성과 이치의 한 귀퉁이를 터득하게 됐다는 작가는 “흙이 말하는 것을 담담히 듣고, 그 목소리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에 감사한다”고 했다.

지종진 지앤아트스페이스 관장은 “인간의 손끝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게 아니라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대충 만들다가 만 듯한 이수종의 도자기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오롯이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는 아기 피부처럼 매끄럽고 탐스러우면서도 찰진 백자 달항아리와, 거칠고 파격적인 분청사기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특히 한마리 검붉은 용이 유백색의 백자 달항아리를 휘감고 돌아 금방이라도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철화백자용문 항아리’는 압권이다. 이제껏 보아왔던, 구름 속을 여유롭게 날던 전통백자 속 용의 모양새와는 사뭇 다르다. 이수종은 철사의 농담을 자유롭게 조절하며 속도감있는 필력으로 용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세부묘사를 과감히 생략하고 힘차게 휘몰아치는 용의 신명나는 동세는 달항아리의 몸통을 한바퀴 돌아 기운생동하는 용으로 탄생됐다.

이와함께 곱게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분청사기 대작들도 그 거침없는, 무념의 상태에서 빚어낸 예술혼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수종에게 왜 ‘분청사기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지 수긍이 가게 하는 작업들이다.
지앤아트스페이스 전시실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이수종 작품전에는 원초적 에너지와 절제된 감성을 드러내는 드로잉과 도자기 회화까지 내걸려 지난 47년간 이수종의 도예인생을 한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다. (031)286-8500 사진제공=지앤아트스페이스. 무료관람.

yr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