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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 블랙박스의 비밀은...
부동산| 2013-07-10 08:26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아시아나항공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충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열쇠인 블랙박스 해독 결과에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기가 착륙 전 항속이 정상의 75% 밖에 되지 않았다는 등의 일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충돌직전 조종사간의 급박한 대화도 일부 공개해 사고 원인이 조종사들의 과실에 있는데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매일 조금씩 공개하는 블랙박스 예비 분석에 대한 논란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블랙박스 조사만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 데 이례적으로 NTSB가 부분적인 자료를 자꾸 공개해 언론들이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 정확한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분적인 정보를 흘려 언론들이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 한국측 정부가 NTSB측에 성급한 브리핑과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네요.

어찌됐든 가급적 빨리 정확한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 합당한 처벌과 정당한 피해 보상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이번 사고로 더 이상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블랙박스 해독 기간이 무려 6개월 이상 걸리는 이유에 대해 요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요즘 같이 1초면 영화 1편을 다운로드 받는 첨단 시대에 블랙박스가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그리 오래 걸리냐는 겁니다. 무슨 복잡한 암호를 걸어 놓았는지, 저장방식이 크게 다른 건지 궁금하다는 거죠.

평소 알고 지내는 한 대기업 임원은 블랙박스 해독 기간이 긴 이유를 두고 “사고가 난 후 단기간에 책임소재가 명확히 가려지면 항공기제작사나 항공사에 치명타가 될 수 있고, 국가 간의 외교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는 등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태가 좀 진정된 이후 최종 결과가 드러나도록 일부러 블랙박스 해독을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더군요.

뭐 제법 그럴듯한 해석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국토교통부의 항공산업 담당자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우선 블랙박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부터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블랙박스에는 비행자료 기록장치(FDR·Flight Data Recorder)와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CVR.Cockpit Voice Recorder) 2가지로 구성됩니다. 이름에 ‘블랙’이 들어가긴 하지만 검은색은 아니고 사고가 나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밝은 주황색 박스 모양입니다.

FDR는 마지막 25시간의 비행자료를 저장하는 폭 12㎝, 길이 45㎝, 높이 15㎝의 박스모양의 장치로 3400G의 충격과 1시간 동안 1100℃의 온도 또는 10시간 동안 260℃의 고온에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습니다. CVR는 마지막 2시간동안 조종실에서 생기는 모든 소리를 녹음합니다. 폭 12㎝, 길이 35㎝, 높이 15㎝로 FDR보다 조금 작고 내구성은 FDR와 동일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블랙박스를 해석하는 건 이 두 장치에 담긴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사고원인을 찾아내는 뜻입니다. 단순히 기본 정보를 뽑아내는 것 이상이라는 겁니다.

일단 조종사간, 관제탑간 대화 녹음이 담긴 CVR은 단 며칠 만에 바로 분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녹음 파일을 확인하는 작업이니 녹음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 해독이 어려울 리 없습니다. 다만 잡음이 많아 조사관 사이 이견이 있다면 최종 결론을 내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네요.

비행자료 기록장치인 FDR은 해독하는 데 좀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기엔 비행기 고도, 속도, 바람 등을 비롯해 비행기 자세, 조종면의 움직임, 엔진의 추력, 랜딩기어의 작동, 전기 공급, 공기압 등 200~300가지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 장치의 기본 정보를 확인하는데 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여기까진 말 그대로 기본 정보를 빼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블랙박스가 파손되지 않았다면 오래 걸려도 한 달이면 모두 확인 가능하답니다.

정작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지금부터라고 합니다. 블랙박스에서 빼낸 기본 정보를 활용해 실제 사고 과정을 정확히 재현해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네요. FDR와 CVR를 세부 시간 단위로 ‘매칭(Matching)’해 음성정보와 실제 조종사 반응(기계 조작)을 따져보고, 동시에 기상센터, 관제탑 등에 기록된 각종 세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 당시 항공기에 어떤 외부 변화가 있는지도 세밀하게 따져 본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항공기 속도가 떨어지면서 충돌한 이유가 기체 결함인지, 조종사의 기기 오작동인지, 관제탑의 문제인지, 아니면 복합적인 다른 요인인지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겁니다.

결국 블랙박스 해독이라는 게 블랙박스에서 단순히 1차 정보를 빼내는 치원이 아니라 그 정보를 통해 사고 당시를 정확히 재구성해 내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전체 활동이라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걸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깁니다. 따라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처럼 NTSB가 발표한 블랙박스에서 나온 몇몇 기본 데이터만으로 사고원인을 예단하는 건 이르다는 겁니다.

실제로 데버라 허스먼 NTSB 위원장은 “조사는 한참 멀었으며 더 많은 정보와 자료를 분석해야 하며, 기장의 과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블랙박스 해석이라는 건 법원에서 판사가 죄를 판결하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판사는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사실)를 모두 고려해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죄가 있는지 판단해 구형을 내립니다. 정확한 구형을 위해선 정보의 나열로는 불가능하겠죠.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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