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서 그런지 대통령께선 단어 하나하나에 상당히 신중하시다. 어려운 한자성어나 전문용어는 직접 쉬운 말로 고치는 건 예사고, 어감 하나 하나 꼼꼼히 따지시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할 때 애를 먹을 때가 많다.”
얼마 전 사석에서 한 청와대 관계자가 털어놓은 고충(?)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열거해 지시하는 ‘깨알지시’와 버금갈 정도로 청와대 참모들에겐 ‘단어 노이로제’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 주변에선 “‘수필가 대통령’을 모시는 어려움이 어련하겠냐”고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1993년 ‘한국수필’ 신인문학상을 받고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인천광역시 업무보고 자리에서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괜찮은 것 같죠?”고 발언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월 27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해 “새 출발을 하는 마당에 공모 등을 통해서 이름을 좋은 단어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설명할 때면 꼭 ‘양질’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였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편견’ 없는 좋은 일자리라는 것을 달리 설명할 좋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지적에 해답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보니, 박 대통령의 노력도 빛이 바래는 모양새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나 ‘시간제 일자리’나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것이다. 대선 때 날을 세웠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두 마디만 할란다. 그런다고 달라지냐. 덥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청와대의 어감 알레르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선 ‘살인진드기’란 용어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자극적 용어를 순화하고 정보를 정확하게 공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