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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포장지가 아니다…생명의 디자인이다
뉴스종합| 2013-08-20 11:27
폐지로 만든 포장지·컴퓨터 서버 폐열로 가꾼 식물원…친환경 가치 녹여낸 디자인, 산업계의 새 혁신으로


‘테크 거인’ 삼성전자가 성취한 수많은 성과 중에 정말 가치로운 ‘혁신’이 하나 있다. ‘친환경 냉장고 포장재’다. 무독성 발포 폴리프로필렌을 소재로 한 이 포장재는 40회 이상 재사용이 가능하다. 종이, 테이프, 스티로폼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99.7% 이상 줄였다. 이 포장재의 도입으로 연간 7000t 규모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나무 13만그루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은 셈이다.

이 포장재는 전 세계의 포장 관련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세계포장기구(WPO)의 월드스타어워즈는 물론 아시아포장연맹(APF)의 ‘아시아스타어워드’에서 ‘에코패키지상’을 수상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 디자인진흥원의 시상식 ‘G-mark’에서도 금상을 받았다.

단순히 포장재의 외면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포장재는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낡고 단단한 개념을 ‘리디자인(redesign)’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수상 이후 많은 가전업체들이 비슷한 고민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냉장고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가 가져온 시각과 철학의 변화가 업계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① 네이버 춘천 데이터센터 ‘각 온실’. 대규모 서버를 식힌 후 발생하는 폐열과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각종 식물을 재배한다.
② LG전자가 디자인한 과천시 주암체육공원. 낡은 공원을 지역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③ 기아자동차가 2009년 ‘쏘울’의 영국 론칭때 선보인 길거리 로고 광고.

▶‘꾸미는’ 디자인에서 ‘가치를 만드는’ 디자인으로=21세기의 산업디자인은 완전히 변했다. 과거의 디자인이 ‘더 예쁜 물건을 만들어 더 많은 심미적 만족감을 제공하고 더 비싸게 파는 것’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21세기의 디자인은 ‘제품ㆍ서비스와 관계된 전 과정에서 어떻게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환경적ㆍ사회적ㆍ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DSR)’을 다 할 것인가’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역시 환경 분야다.

삼성전자의 경우 친환경의 개념을 여느 기업보다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올봄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4’와 ‘갤럭시 탭3’의 포장재는 폐지를 활용한 재생지로 디자인됐다. 특히 ‘제지회사나 인쇄업체 등이 사용하고 남은 소비자를 거치지 않은 폐지(Pre Recycled Paper)’가 아니라 ‘소비자가 한차례 이상 사용한 바 있는 폐지(Post Consumer Recycled Paper)’를 사용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재활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잉크 역시 미국대두유협회가 인증한 대두유잉크를 사용했다.

이 같은 접근은 ‘제품의 기본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고의 디자인 어워드인 IDEA에서 금상을 수상한 콘셉트 프린터 ‘오리가미 프린터’는 삼성전자가 바라보는 친환경 디자인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종이접기(Origami)’라는 이름 그대로 이 제품은 종이로 만들어졌다. 프린터의 핵심인 카트리지를 제외하고 모두 골판지를 이용해 접어 만들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많은 종이를 소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프린터가 그 수명을 다하면 다시 프린트가 가능한 종이로 태어난다는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프린터를 중심으로 친환경적 순환구조를 새로 디자인한 셈이다.

이처럼 환경 문제를 떠안으려는 디자인의 노력은 여러 형태로 이뤄진다. 단순히 원재료를 낭비하지 않는 것을 넘어 언뜻 관계없어 보이는 각 산업의 결과물을 환경과 생태 속에 녹여내려는 노력들로 진행 중이다.

네이버가 올 초 춘천에 건설한 테이터센터 ‘각 온실’은 무관해 보이는 IT산업이 환경과 조우하는 법을 보여준다. 이곳에선 대규모 서버를 식힌 후 발생하는 폐열과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각종 식물을 재배한다. 재배에 필요한 ‘조경수’ 역시 시수(수돗물)가 아닌 우수(빗물)를 정제해 사용한다. 이를 통해 강원도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깽깽이풀, 양지꽃, 벌개미취, 바람꽃 등의 토착식물을 재배해낸다. 이렇게 키워진 풀들은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여진다, 온실은 직원들과 지역민들에게 개방돼 힐링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서버의 폐열’이라는 IT기업 내부의 문제를 다시 디자인해 환경과 인간, 기업의 업(業)이 아우러지는 새로운 구조를 그려냈다.

환경을 위한 새 디자인은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과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2009년 쏘울(Soul)의 영국 론칭때 현지의 ‘커브미디어’와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판이나 종이 위에 광고를 인쇄하는 대신, 길거리 바닥의 쌓인 먼지를 닦아 내거나 모래조각을 만들어 로고를 새기는 방식의 친환경 광고를 디자인해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4만명이 넘는 사람이 웹사이트를 다녀갔고, 5000명 이상이 소울의 테스트 드라이브를 위해 온라인 신청을 했다. 

④ 삼성생명과 제일기획이 손잡고 자살률 1위의 마포대교를 위안과 안식의 공간으로 탄생시킨 ‘생명의 다리’.
⑤ 롯데몰 김포공항 유니버설디자인. 차별의 ‘턱’과 ‘벽’을 없애는 대신 공간 곳곳에 배려를 담았다.
⑥ 삼성전자가 올봄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4’와 ‘갤럭시 탭3’의 포장재는 폐지를 활용한 재생지로 디자인됐다. 특히 ‘소비자가 한차례 이상 사용한 바 있는 폐지’를 사용했다. 잉크 역시 대두유잉크를 사용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디자인=디자인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기도 한다. 희망과 꿈이 필요한 곳에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파하려는 시도다.

삼성전자의 사내제도인 ‘창의개발연구소’가 탄생시킨 안구 마우스 ‘아이캔(eyeCan)’은 IT 개발자들이 새롭게 가치를 디자인해낸 사례다. 각 사업부 출신 5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신마비로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안구로 조작하는 마우스를 만들어 냈다. 중요한 점은 제품의 가격이다. 기존에도 안구마우스는 존재했다. 하지만 1000만원이 넘는 가격은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접근할 틈을 주지 않았다. 삼성전자팀은 이를 5만원 이내 재료비로 제작이 가능하게 구현해냈다. 매뉴얼과 소프트웨어도 공개해 모두가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제품의 개념과 접근법을 새롭게 디자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을 허락한 것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모두가 쓰는 공간을 더 가치롭게 만드는 데도 쓰인다. LG전자의 디자이너 150명은 지난해 경기도 과천시 주암체육공원의 벤치 40여개와 분수대 가벽을 새롭게 디자인해 재탄생시켰다. 콘셉트 선정과 시안, 밑그림, 채색, 설치 등 모든 작업을 진행해 낡은 공원을 지역사회의 명소이자 자산으로, 지역민들의 힐링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삼성생명과 제일기획이 손잡고 자살률 1위의 마포대교를 위안과 안식의 공간으로 탄생시킨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도 디자인이 공간의 새 가치를 창조해낸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도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남녀노소, 국적, 장애 유무를 넘어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다. 국내에서는 상업시설 중 최초로 ‘롯데몰 김포공항’에 유니버설 디자인 체계가 도입됐다. 차별의 ‘턱’과 ‘벽(barrier)’은 없는 대신 공간 곳곳에 배려를 담았다. 문자와 픽토그램의 인지의 용이성을 위해 대비도가 높은 검정색과 흰색을 활용하고 대형 벽면 사인 등을 이용해 ‘인식의 용이성’ ‘쾌적성’ ‘안전성’ 등을 확보했다. 

⑦ 삼성전자의 친환경 냉장고 포장재. 무독성 발포 폴리프로필렌을 소재로 한 이 포장재는 40회 이상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 포장재의 도입으로 연간 7000t 규모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기회가 있다=많은 전문가는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은 반드시 지속가능성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을 통해 지구와 사회ㆍ인간을 지속가능한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속가능한 가치를 디자인하기 위한 노력의 와중에 탄생하는 독창적인 가치는 일반적인 소비자들의 인식을 뛰어넘어 획일화된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버려진 콘크리트 배수 파이프를 재활용해 객실을 꾸민 오스트리아의 다스파크호텔(Dasparkhotel)은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 됐다. 어찌 보면 볼품없고 건조해보이는 콘크리트풍의 호텔이지만, 이곳에서 고객들은 다른 호텔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경험과 지구와 환경을 위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동시에 얻게 된다.

정재훈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지속가능한 제품ㆍ서비스에 대한 관심의 강도와 확산 속도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이를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시도해 적극적으로 바꾸어간다면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DSR란=헤럴드경제가 매주 게재하는 디자인면의 주제는 ‘이젠 DSR(디자인의 사회적 책임ㆍDesign’s Social Responsibility)이다’입니다. 단순한 제품과 상품 디자인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담은 디자인, 성과와 혁신을 넘어 공존의 가치를 담은 디자인, 그것이 바로 DSR입니다. 헤럴드경제가 연중 최대 행사로 10월 진행하는 ‘헤럴드디자인위크 2013(Herald Design Week 2013)’ 전까지 게재되는 이 지면에서 독자 여러분은 디자인의 미래 창(窓)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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