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우리 사진계에서 ‘민병헌’이란 이름은.. 그의 새 시리즈 ’江‘
라이프| 2013-10-02 15:19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우리 사진계에서 ’민병헌‘이라는 이름은 특별하다. 그의 사진은 지극히 어둡거나, 또는 심할 정도로 밝고 하얗다. 심심할 정도다. 마치 물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미묘한 회색조의 농담 변화만으로 담벼락 어딘가에 피어난 잡초라든가 물안개가 낀 폭포 등을 말갛게 표현한 민병헌(58)의 사진은 그 섬세함과 예민함이 더없이 매혹적이다. 국내외에 민병헌 사진의 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회색 계조(그라데이션)의 ‘잡초’ ‘안개’ ‘설경' 사진 연작으로 잘 알려진 민병헌이 이번에는 ‘강(江)’ 시리즈를 내놓았다.서울 방이동의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은 사진가 민병헌의 새 연작을 처음 선보이는 작품전을 열고 있다. ‘민병헌-강’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서정성이 물씬 감돌되 보다 묵직하고 농익은 사진들이 내걸렸다.

ⓒ민병헌 MG089, 2009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민병헌은 근래들어 날로 숫자가 줄어드는 아날로그 흑백 은염사진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사진가 중 한 명.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으로 대상을 찍고 직접 손으로 프린트 작업까지 마무리한다.

예술사진 분야에서 ‘민병헌’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독보적인 회색조 스타일과 동의어로 통한다. 즉 극단적인 밝은 톤으로 연회색의 농담을 강조하거나 진한 회색 혹은 갈색톤으로 일관한 사진을 통해 이 땅의 자연풍경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사진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짙은 농도에서 옅은 농도까지 미묘한 그라데이션(계조)을 추구하는 민병헌의 사진들은 절제된 미감을 선사한다. 또 독특한 촉각성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내놓은 ‘강’ 연작은 작가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각오 아래 작업한 것들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고요한 강물, 물안개가 낀 강변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은 사진은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좀 더 성숙된 사유가 담겨 보다 그윽하다.

ⓒ민병헌 MG199, 2010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특히 신작 ’강‘은 그의 이름을 알린 초기연작 ‘별거 아닌 풍경’과 대척점에 서있어 흥미롭다. 그는 1987년 울퉁불퉁 돌덩이가 박힌 자갈이 굴러다니는 길바닥을 찍은 ‘별거 아닌 풍경’으로 사진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작가는 당시처럼 예민한 촉각을 세워 스트레이트한 시각으로 대상인 ‘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좀 더 무게감있고 묵직한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작가의 변모를 읽게 해준다. 무심한 듯하지만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오묘한 세계가 그윽하면서도 깊이있게 담긴 것.

미술관 측은 액자의 유리를 제거해 관람객의 눈과 작품 사이에 아무 것도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민병헌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회색조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성인 6000원, 학생 5000원.

yrlee@heraldcorp.com

ⓒ민병헌 RT017, 2012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민병헌 RT038, 2012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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