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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국정감사, 민의(民意)의 축제(Festa)인가, 그들만의 속풀이인가
뉴스종합| 2013-10-11 06:35
벌써 26년째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이 출범한 이래 매년 가을 정기국회에서는 어김없이 국정감사가 실시됐다. 선거가 민의(民意) 그 자체라면, 국정감사는 국정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민의의 축제다. 군사독재였던 4,5공화국 15년간 중단됐지만, 이후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국정감사는 행정부 권력은 물론 독립성이 보장된 사법부까지 견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정감사의 모습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나라를 외환위기로 내 몬 기업들에 대한 책임추궁을 시작으로, 이후 덩치를 불린 대기업에 대한 분풀이, 집권실패의 한풀이로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제 국정감사 장에 가장 많이 불려나오는 이들은 ‘국정’을 담당한 정부 관료들이 아니다. 2011년 국정감사 증인의 171명 가운데 35.67%인 61명이 기업인이었다. 2012년에는 347명의 증인 가운데 기업인은 145명으로 비중이 41.79%로 높아졌다. 증인채택이 진행중인 올 해는 400여명의 증인 가운데 절반이 기업인이 될 전망이다.

이렇게 20일의 국정감사 기간동안 일평균 10여명의 기업인을 증언대에 세우는데, 의원들의 질문이란 게 일천하다.

호통치거나, 이미 드러난 문제점을 ‘다시 읽기’하는 게 전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지만, 경영자들은 주주와 종업원, 그리고 고객에 대해 책임을 진다.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행정권과 사법권의 몫이고, 국회는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본연의 임무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임을 내세워 기업에 군림하려는 의원들도 많다. 꼴불견이라는 말을 뒤에서 듣는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출판기념회에 초대할 때는 언제고, 또 언제는 증인으로 나오라며 압박한다. 막상 불러 놓고는 뻔한 얘기로 언성만 높이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잘 못해서 부르는 건지, 잘 못 보여서 부르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오죽하면 기업들이 일반 정부대응 인력과 별도로 국회 대응 인력을 운용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기업인에 호통치기 바쁘다보니 관료들에 대한 감사는 부실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연중 내내 국회 불려다니는 데 이골이 난 관료들은 뻔한 대답으로 일관한다. 관료들의 임면권은 대통령의 권한데 속하고, 집권여당은 늘 관료들의 보이지 않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 때 지적됐던 문제들이 반복되는 현상도 이런 이유다. 공기업은 매년 방만경영을 하고, 금융당국은 관치를 하며, 주식시장 개인투자자들인 해마다 피해를 보는 식이다. 드러난 문제를 호통만 치다보니 정작 중요한 해결책 마련이나 대안제시는 하지 못한다.

국정감사가 늘 정쟁에 희생당하는 것도 문제다. 이번 정기국회는 여야간 정쟁으로 한 달 넘게 시작이 지연됐다. 의원들은 정쟁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일정에 동원돼야 했다. 복지논란이 뜨거운 내년 예산안 심사도 시일이 촉박하다. 1년농사를 짓는다는 국정감사 준비는 자연스레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아무리 국감자료 준비가 보좌관의 몫이라지만 올 해 처럼 여야간 정쟁이 첨예하게 진행되다보면 자료준비가 쉽지 않다. 4대강이나 동양그룹 사태 등 정치권의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의원들의 관심도 높지만, 그렇지 않은 소소한 국정의 문제점들의 경우 보도자료를 통해 반짝 주목을 받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이번에도 여야는 국감장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태, 이석기 사태, 국정원 사태 등 각종 ‘사태’들로 맞붙을 태세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지난 8월부터 실시한 ‘응답하라 2013’이란 국정감사 국민공모에는 고속도로 사고를 줄이는 방법, 재활용 쓰레기 처리비용 절감 등의 국민들의 피부에 속속 와닿는 소소한 제안들이 대부분이다. 올 해 처음이었던 이번 행사를 통해 그 동안 정치권의 국정감사는 ‘그들만의 속풀이’였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감이 예산 감사 중심으로 돼야 하는데 한탕주의식의 폭로성 국감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며 “국감을 20일만 하고 잊어버릴 게 아니라 국감 보고서 작성 때까지 제대로 하는지 끝까지 살피고, 지난 국감에서 자신이 지적한 것을 스스로 감사하는 등 실질적인 국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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