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역사가 말하는 국가 부채와 파멸
뉴스종합| 2013-10-15 06:44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1339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930년대 제3제국의 등장…

최근 미국이 연방정부 부채한도 인상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며 어수선한 가운데, 미국이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기 전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유진 화이트 러트거스대학교 교수는 “위의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대재앙과 같은 경제 문제”라며 “행복한 결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80년 전인 1933년 5월, 전세계가 대공황을 겪으며 독일은 패전 후 배상금 등 일방적인 장기채무 지불 압박을 받았고 아돌프 히틀러가 3개월 후 총통으로 등극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 히틀러는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인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더욱 공고히할 수 있었다.

<사진1>나치 정권의 수장으로 총통의 자리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 [사진=위키피디아]

독일은 1차세계대전 직전이었던 1913년, 세계 3대 경제대국이었으나 전쟁에서 패한 이후 막대한 인플레이션과 채무에 대한 압박이 디폴트를 부르고 나치 정권에 힘을 실어 줬다.

알브레히트 리츨 런던정경대 경제역사학 교수는 독일이 배상금과 승전국 수출 불허로 휘청거렸고 결국 1922년 연쇄 디폴트를 맞게 됐으며 독일이 채무를 위해 다시 돈을 빌린 것은 폰지(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보장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와 비슷한 형태라고 분석했다.

<사진2>프랑스 경제 위기와 대혁명을 불러일으킨 루이 16세. [사진=위키피디아]

1339년 백년전쟁은 부채한도 초과로 나타난 결말을 잘 보여준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도시국가들이 소유한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난 후 디폴트를 선언해버렸고 가장 큰 피해자는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겠지만 자금 회수에 실패한 이탈리아 자본가들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였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도 프랑스 왕정의 디폴트 선언 직후 일어났다. 루이 14세 말기 이미 아우구스부르크 동맹전쟁(1688~1697)과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1701~1713 )등으로 국고는 파산에 이르렀고 루이 16세의 치세에 이르러서는 전쟁과 왕실의 과소비 등으로 1770년과 1788년에 디폴트를 선언했다. 국민들에겐 막대한 세금부과가 강요됐고 심지어 귀족에 대한 과세도 실시돼 온국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결국 왕정은 혁명으로 몰락했다.

<사진3>백년전쟁을 일으키고 디폴트를 선언했던 에드워드 3세. [사진=위키피디아]

독일과 프랑스는 1800년대 이후 각각 8차례씩 디폴트를 맞았으며 남미 국가들은 1951년부터 5차례 디폴트가 있었다. 그리스는 2012년을 포함해 독립 3년 전인 1826년부터 6번 채무 불이행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도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 이후 226억달러의 국제 구제금융 패키지를 통해 회생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세계가 하나로 연계되어있는 오늘날, 최대 경제대국의 몰락은 인접국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분석하며 브라질부터 취리히에 이르기까지 시중에 유통 중인 미국 채권 기반의 5조달러도 유통중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할 경우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의 침체 위협도 존재한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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