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원조 친박 ’서청원의 귀환…朴정부 성공 버팀목 될까
뉴스종합| 2013-10-31 11:10
서청원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부채의식’으로 얽히고설킨 그가, 박근혜정부의 ‘선봉장’ ‘호위무사’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겠다는 각오다.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배려해준 새누리당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 박근혜정부의 성공에 힘을 보태는 데 정성을 다하겠다. 박근혜정부가 성공하도록 버팀목이 되고 울타리가 되겠다”는 그의 당선 첫 인사말이다.

정치인 서청원의 인생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11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서 의원은 문민정부 시절 정무1장관, 한나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그가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다.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서 의원은 1998년 치러진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박 대통령을 공천했다. 박 대통령은 정계 입문부터 서 의원에게 큰 빚 하나를 진 셈이다.

반대로 서 의원 역시 박 대통령에 ‘일생일대’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서 의원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진두지휘했던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하고 말았다. ‘차때기’와 ‘탄핵역풍’으로 당 자체가 무너질 위기였다. 서 의원의 정치생명 역시 백척간두에 놓였다. 이때 서 의원과 한나라당을 구한 것은 박 대통령이다. 총선을 앞두고 구원투수로 나선 박 대통령은 천막당사 배수진으로 127석 제1야당으로 한나라당을 구했다.

이후로 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민주화 상징 상도동계 수장이라는 간판을 버렸다는 비판도 감수했다.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에서 서 의원은 MB 저격수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박 대통령의 경선 탈락, 그리고 본인의 18대 총선 공천 탈락이었다.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위기였다.

그러나 서 의원이 또 한 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박 대통령이었다. 당시 총선에서 서 의원은 ‘친박연대’를 구성했고, 결국 14석 원내 제3당이라는 의미있는 승리를 거뒀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고 나오면서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고 한 서 의원, 그리고 2011년 서 의원이 이끄는 모임에 참석해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박 대통령의 화답은 정치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큰 빚을 진’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복권된 서 의원이 본격적으로 빚갚기에 나설 차례”라고 말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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