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벽으로 내몰린 한국정치
지도부는 비전없고“의원들은 자기 말만…
朴대통령 시정연설후 법안심사소위 취소등
수시로 보이콧 선언 투쟁전략도 냉온탕
토론하고 투쟁하는 ‘광장정치’도 아니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원내정치’도 아니고…
“민주는 선장없는 선원이다” 볼멘소리도
치열하게 토론하고 독하게 투쟁하자는 ‘광장정치’도 아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꼼꼼히 민생 입법과 예산안을 따져보겠다는 ‘원내정치’도 아니다. 오로지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만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 이야기다.
11월 들어 민주당 의원총회는 5차례 열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전후로는 4차례나 의원총회가 열렸다. 그런데 매번 의총을 마치고 나오는 의원들에게선 볼멘소리만 흘러나온다. “지도부가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의원들 제각각 자기 말만 하고 나온다”는 목소리다.
지난 13일 민주당 의총은 대통령 시정연설을 앞두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어 15일, 18일 열린 의총도 같은 안건이었다. 닷새 동안 세 차례나 의원들을 전원 소집해놓고 통보한 결론은 ‘대통령 시정연설에 참석은 하되, 예우는 각자 알아서’라는 지도부 방침이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결정하는 내용이면 애초에 지도부가 안을 제시해주고, 왜 이러한 안을 짤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의총이 열려야 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이런 걸 결정하자고 바쁜 의원들을 세 차례나 소집하느냐”면서 혀를 찼다.
국회는 19일 본회의를 열어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을 진행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국가기관과 공무원노조 등의 대선 개입 의혹, 검찰의‘ 2007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수사 결과 등 민감한 정치 현안들을 놓고 양보 없는 대결을 펼쳤다. 사진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찾아가 황교안 법무장관과 악수하자 정홍원 국무총리가 보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리더십 실종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 중진 의원은 “지도부는 여당과 물밑 협상을 하면서 ‘정보’가 몰릴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정보’를 다른 의원에게 알려주지 않고 배경 설명 없이 ‘일단 다 수용하겠습니다. 다들 이야기해 보세요’라는 태도로 사안을 던져줘 버리니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본래 당의 지도부는 긴 호흡을 가지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안에 대해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지도부는 툭하면 의총을 열고, 국회일정 보이콧을 선언하며, 대여 투쟁 전력 역시도 냉ㆍ온탕을 오간다. 지난 13일 의총에서 전병헌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청문회를 제외한 상임위 의사일정 보이콧’을 했던 절차에 대해 의원들에게 사과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는 사사건건 ‘사과’하라고 재촉하면서 자신들은 정작 방어막만 치고 있다. 지난 18일 강기정 의원의 ‘폭력 사태’도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한 행패에 가까웠다. “피해자인 강 의원이 가해자가 되는데 지도부는 무얼 하느냐”는 당내 비판이 제기되자 지도부는 19일 의총에서 “의장에게 항의하고 진상 규명에 협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인사청문회에 관심을 집중시키겠다면서 상임위원회 법안 심사 활동을 접었던 민주당은 19일부터 시작되는 대정부 질문 사흘 동안 또 상임위를 보이콧했다. 취득세 영구 인하, 수직 증축을 허용하는 리모델링 허용 등 해당 사안에 따라 시장 혼란이 큰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는 또다시 무산됐다. 국토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국토위 오후 회의를 앞두고 ‘상임위에 참여는 하되, 법안은 의결하지 말라’는 지도부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은 뒤로 김한길 대표는 “말씀은 많았지만 정답은 없었다”고 촌평했고, 전 원내대표 역시 “국민 눈높이에도, 민주당 눈높이에도 턱없이 부족한 연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최고위원을 지낸 중진 의원은 “지금 민주당 의원들은 선장 없는 배의 선원”이라고 혹평하면서 “지도부는 대통령이 ‘위대한 결단’을 내려주길 바라고 ‘본인이 희생’하는 것이 제대로 된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의 ‘봉건적 DNA’가 지배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