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반
[위크엔드]세수 확보 혈안에…기부 가로막는 세제
뉴스종합| 2013-12-20 07:27
[헤럴드경제=하남현 기자] 개인사업가 A씨는 주식 200억원어치를 대학에 기부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세금 폭탄. 증여세 140억원을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주식 기부에 대해 5%까지만 세금을 면제하고 나머지에 대해 최대 60%에 달하는 세금을 매기는 한국의 세제 탓이다. 이래서는 웬만한 거부가 아니고서는 고액의 기부를 하기가 쉽지않은 상황이다. 이 정도라면 빌 게이츠라도 기부를 꺼리지 않을까. 게다가 정부는 내년도 세법개정안에서 기부금 공제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이로인해 연간 1조2000억원의 기부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어려운 나라살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얇은 지갑을 털어 나눔을 실천하려는 선량한 이들의 기부금에까지 세금을 마구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은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세액공제로 대체하는 방안을 담았다. 소득공제는 일정 부분을 과세 대상 소득에서 제외(공제)하는 것이며 세액공제는 최종적으로 산출된 세금(세액)에서 일부를 빼주는 것이다. 기부금이 세액공제 대상이 되면 소득공제에 비해 세제 혜택이 줄어든다.

예컨대 연봉 8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1년에 200만원을 기부한다고 가정하면 기존 소득공제 방식대로라면 48만원의 세금 혜택을 받게 되지만 개정안을 적용하면 30만원만 감면된다. 결국 18만원의 세금이 실질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세제혜택 받겠다고 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최근과 같은 경기 침체 속에 한푼이 아쉬운 서민들의 기부를 위축시킬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동안 정부는 기부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크게 강화해 왔다. 정부·지방자치단체에 내는 법정기부금의 소득공제 한도는 지난 2000년 연 소득액의 5%에서 100%로 확대됐다. 또 사회복지시설 등에 내는 지정기부금의 공제 한도도 1999년 5%에서 지난해 30%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것이 한국 기부 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1999년 8500억원에 불과했던 개인 기부 소득공제액은 2011년 7조원을 넘겨 8배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임기 말인 올 1월 기재부가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면서 기부금 소득공제를 특별공제 한도 2500만원 이내로 제한됐다. 사실상 고액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해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여기에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통해 공제 혜택마저 바뀌면서 세법이 기부를 오히려 방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재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패널의 소득증빙자료를 활용한 근로소득자들의 기부금 가격탄력성 추정’ 발표를 통해 기부금 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 연간 1조2000억원의 기부금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송 교수는 “근로소득자들의 원천징수영수증을 토대로 추정한 결과 소득구간별 기부금의 가격탄력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 기부금 공제 개편으로 인한 세수 효과보다 민간 기부 축소효과의 크기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며 “세수증가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해 복지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체 기부금 규모는 상당한 감소를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13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에서 “기부문화 확대라는 정책적인 효과를 고려할 때 소득공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때 고소득자는 과세표준 금액을 낮추는 수단으로 기부금을 납부해 소득공제를 받으려 할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적이 계속되자 기재부는 기부금에 일괄적으로 1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할 방침을 수정해 3000만원 초과 금액은 30%로 설정해 기부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공제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인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율이 최대 66%에 이르는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에 비하면 여전히 혜택 수준은 낮다. 빌 게이츠와 같은 기부왕이 나오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airins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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